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사람들은 대다수가 특정 대상을 숭배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종교적 신앙이나 절대군주를 신성시 하는 것에서부터 아이돌그룹이나 스포츠스타에 열광하는 것까지 숭배의 형태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심리적인 근원을 따지자면 원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겠지만, ‘개인숭배’는 1877년 카를 마르크스에 의해 정치적 용어로 쓰였는데, 흐루쇼프가 스탈린을 격하할 때 차용한 때문에 널리 알려졌다.

독재자를 우상화하고 떠받들어 모시는 개인숭배는 주로 일인독재 체제의 장기화에 따라 대중들을 선동하는 상징조작을 통해 이루어진다. 대중매체 등을 통한 광고나 선전 등으로 이상적이고 영웅적인 이미지를 만들거나 신성한 느낌까지 불어넣어 숭배의 대상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정치적이나 종교적 목적 말고도 요즘에 와서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를 내세워 상업적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연예인들이나 스포츠스타들의 숭배는 스트레스의 해소나 대리만족 등의 순기능이 있지만, 정치나 종교 지도자의 우상화하는 경우에 따라서 인류의 역사를 바꿀 만큼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인류 역사의 거의 모든 군주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개인숭배를 위한 상징조작을 해왔다. 고대 이집트나 로마, 잉카, 아즈텍 같은 제국들의 유적을 보면 얼마나 엄청난 규모로 군주의 신격화가 이루어졌는지 짐작을 할 수 있다. 절대군주에 대한 개인숭배는 근세에 오면서 점차 약화되는 추세였으나 20세기에 와서는 독일의 히틀러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소련의 스탈린과 같은 독재자들의 전체주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했다. 전체주의 정권이 급진적인 사상에 따라 사회를 변혁하려고 할 때 만들어지는 숭배 현상은 혁명적인 변혁을 주도하는 지도자에 대한 상징조작을 통해 이루어진다. 일개 평민 출신이었던 히틀러가 선동전문가 괴벨스에 의해 위대한 지도자의 이미지로 변신하는 과정은 바로 상징조작의 위력을 잘 보여준다.

개인숭배와 상징조작이라면 북한을 빼놓을 수 없다. 독재자의 상징조작과 민중의 우민화가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예가 바로 북한의 경우다. 북한 체제의 원조인 김일성에 대한 상징조작은 해방 직후 소련의 로마넨코 사령관이 북한 지도자들에게 김일성을 가장 뛰어난 독립운동가로 소개하고 북한의 지도자로 내세우면서부터다. ‘조선로동당력사연구소’에서 발간된 ‘항일빨치산 참가자들의 회상기’에는 김일성이 축지법을 써서 하늘을 날고, 모래로 쌀을 만들며, 가랑잎을 타고 대하를 건너는 등 신출귀몰의 영웅으로 묘사되고 있다. 15년간 10만여 회 전투를 벌여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얘기도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에 걸쳐 김일성의 우상화를 빼고는 논의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사회주의권의 대표적인 독재자인 스탈린이나 모택동과도 비교가 안 될 만큼 절대적인 개인숭배가 이루어졌다. 김일성의 우상화를 위한 구조물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북한 주요 도시에 세운 70여 개의 대형 김일성 동상을 비롯해 곳곳에 널려있는 흉상과 석고상을 합치면 3만5천 개가 넘는다고 한다. 김일성의 우상화는 혈통과 가족에 까지 확대되어 증조부 김응우는 셔먼호사건을 해결한 인물이고 아버지 김형직은 3·1운동을 이끈 사람이라고 역사의 날조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조작된 절대권력은 결국 패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역사가 증명하는 결말이 아닐까.

정보를 실어 나르는 각종 매체가 날개를 단 디지털시대에는 상징조작이 훨씬 더 손쉬워졌다. 정치권에서는 당연히 그것을 최대한 이용하려 들기 마련이다. 어떻게 각종 매체를 장악하고 여론을 선도하느냐에 정치적 성패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매한 군중들이 정보의 진위를 구별하지 못하고 불순한 상징조작에 부화뇌동하다보면 망국의 길로 갈 수 있다는 것도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