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원계명대 교수·유아교육과
이수원
계명대 교수·유아교육과

어릴 적 필자가 병원놀이를 할 때 주로 맡던 역할은 의사가 아니라 간호사였다. 돌이켜 보면 필자가 성장하던 지역은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곳이었기 때문에 의사 역할을 하는 남아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잔소리하고 놀이 상황을 이끌어 나가면서도 결코 의사 역할을 맡지 않고 간호사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성 고정관념에 따라 어떤 장난감으로 어떤 놀이를 할 것인지를 선택한다. 성 고정관념은 만 2세부터 부분적으로 나타나며 만 4세 이후에 정점에 달한다. 때문에 아이가 걸음마를 하는 순간부터 유연한 성역할 관념을 가질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남아가 주로 사용하는 놀잇감과 여아가 주로 사용하는 놀잇감을 함께 제공하여 성별에 의해 놀이가 구별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유연한 성역할 관념을 지원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남아에게는 독립성, 성취, 경쟁을 기대하고 여아에게는 나눔과 배려, 순응을 기대하는 부모의 태도도 아이에게 성 고정관념을 심어줄 수 있다.

한편, 취학전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성별에 따라 신체구조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호기심을 갖는다. 대부분의 경우, 또래 이성의 신체가 자신의 신체와 다르기 때문에 갖는 단순한 호기심이다. 하지만 아이가 초등학교 재학 중인 형으로부터 이성 또래를 성적으로 괴롭히는 방법이나 음란한 이야기를 배운 경우 유치원에서도 문제를 일으킨다. 교실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동안 화장실에서 남아가 여아를 성적으로 놀리는 일이 발생한 적이 있다. 성 교육이 학교나 유치원에서만 할 수 없고 학부모의 협조가 필요하여 남아의 성적인 놀림을 학부모에게 알렸더니 여아의 학부모는 이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지만 남아의 학부모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사회에서 성 피해자는 여성만이 아니며, 성별을 넘어서서 누구도 성 범죄의 가해자나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남아든 여아든 모두 성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

어린이를 위한 성 교육 방향을 두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성 교육의 핵심은 생명의 소중함이다. 생식기를 함부로 남에게 보이거나 만져서는 안 되는 이유가 생식기는 아기를 출산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잉태하는 기능이 있는 만큼 생식기를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 아이에게 전달할 성교육의 핵심 메시지이다. 둘째, 성 교육의 내용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은 무엇이며 어떻게 도움을 구하는가이다. 아이들은 아직 경험이 부족하여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모를 수도 있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느껴도 어떻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를 모를 수도 있다. 때문에 낯선 사람뿐만 아니라 친척이나 친구가 내 몸의 일부를 보여 달라는 요구는 잘못된 것이며 이 때 단호하게 “안돼!”라고 거절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곧바로 가까운 경찰서나 담임교사, 부모에게 이 일을 알리도록 지도하자. 내가 베푸는 호의나 도움을 상대가 원치 않을 때에는 더 이상 호의도 도움도 아니다. 성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원치 않는 성적인 놀림을 멈춰야 하며 상대가 멈출 수 있도록 단호하게 말하는 것 또한 익힐 필요가 있다. 아이가 성에 호기심을 가질 때 아이를 꾸짖거나 수치심을 주기 보다는 궁금증이나 고민을 표현할 수 있도록 수용적인 분위기가 필요하다. “나 어떻게 태어났어?”라는 아이의 질문에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단다.”라는 대답은 성 문제를 덮고 감추는 일일 것이다. 대신, 있는 그대로 대화할 것을 권한다. 아이가 어리다면 출생 과정을 단순하게 설명하며 아이가 성장할수록 출생과 관련된 과학 정보를 첨언할 수 있다. 평소 부모가 아이 이야기를 잘 들어주어 아이가 성 문제에 직면했을 때 어려움 없이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가 서로를 바라볼 때 성별을 넘어서서 존엄한 인격체로 보기를 연습한다면 아이 세대의 사회는 지금보다 더 건전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