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은 소년에게 대답합니다. “마음을 다 하는데 있다.” 삼근계(三勤械)로 널리 알려진 스승의 가르침을 평생 가슴에 담은 소년은 부지런히 노력해 학문의 거장이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황상. 다산이 가장 아낀 제자입니다.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어떻게 동기를 부여할 것인가에 대해 깊고 넓은 성찰과 연구가 끊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제대로 동기를 부여 받아 마음을 다하는 상태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다산의 시 애절양(哀絶陽)에 그 힌트가 숨어 있습니다. “갈밭마을 젊은 아낙 길게 길게 우는 소리 / 관문 앞 달려가 통곡하다 하늘 보고 울부짖네 (중략) 남편이 칼 들고 들어가더니 피가 방에 흥건하네 / 스스로 부르짖길 ‘아이 낳은 죄로구나!’ / 부자집들 일 년 내내 풍악 울리고 흥청망청 / 이네들 한 톨 쌀 한 치 베 내다 바치는 일 없네 / 다 같은 백성인데 이다지 불공평하다니 / 객창에 우두커니 앉아 시구편을 거듭 읊노라.”

관가의 수탈이 극에 달해 죽은 시아버지에게서 세금을 뜯어내는 백골징포, 입가에 젖이 마르지 않은 갓난 아기도 장정으로 취급해 군포를 징수하는 황구첨정의 실상을 고발하는 시입니다. “이것은 1803년 강진에 있으면서 지은 시이다. 갈대밭에 사는 한 백성이 아이를 낳은 지 사흘만에 군적에 등록되고 이정이 소를 빼앗아가니 그 사람이 칼을 뽑아 생식기를 스스로 베면서 하는 말이 ‘내가 이것 때문에 곤액을 당한다’ 하였다. 그 아내가 생식기를 관가에 가지고 가니 피가 아직 뚝뚝 떨어지는데 울며 하소연했으나 문지기가 막아버렸다. 내가 듣고 이 시를 지었다”

시대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끌어안을 때 터져 나오는 비통함의 눈물이 심장을 적실 때 마음을 다하는 일은 가능한 것입니다. 마음(heart)을 다하는 일은 하늘의 천명을 깨달았을 때, 내면에 천둥처럼 울리는 부름을 듣게 되었을 때 싹트기 시작합니다. 다시 태어나도 바꾸지 않을 진짜 나다운 삶을 마주했을 때 불붙어 어찌할 수 없는 마음입니다. 마음을 다하는 일은 순간적인 호기심에 의해 여기 저기를 기웃거리는 얄팍한 동기부여로부터 움직여지는 삶이 아닙니다. 집어등의 환한 불빛처럼, 우리의 관심을 끌기 위해 여기저기 화려하게 반짝이는 빛에 휘둘리는 삶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비통함’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다산의 애절양 그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고 이웃을 바라보고 세상을 응시할 때 비로소 내 안에 불붙는 마음입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