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일본이 벼르던 대로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실행에 옮겼다. 이른바 우리 대법원의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국가 차원의 ‘경제보복’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의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와 TV, 스마트폰 등에 사용되는 3개 아킬레스건 같은 품목을 걸었다. 일본의 조치를 놓고 이 나라는 또 진영별로 쫙 갈려서 볼썽사납게 맞서는 중이다.

정부·여당과 진보 쪽의 용감무쌍한 견해는 언제나 그렇듯 이념과 ‘명분론’이 앞선다. 강제징용 배상판결은 어디까지나 사법부의 영역이기 때문에 3권분립을 지키고 있는 나라에서 행정부나 정치권의 소관이 아니라는 논리부터 편다. 일본 아사히신문과 도쿄신문도 자국 정부의 조치를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비판했다고 알려준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등도 한결같이 일본이 부당하다고 평가했다고 전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일본의 속 좁은 조치는 부메랑이 될 것이기 때문에 전쟁을 오래 끌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낙관론까지 읊어댄다.

그러나 다수의 경제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이 한걱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의 경우 일본의 소재 공급이 끊겨도 4개월은 버틸 수 있지만, 그 이상 끌면 우리 기업뿐 아니라 전 세계 공급망에 큰 피해가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벌써 자동차 및 화학 업계까지 긴장하고 있는 판이다.

보수를 중심으로 한 야권은 문재인 정부의 무대응 무대책을 물어뜯는 일에만 여념이 없다. 자유한국당은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대한 정부 대응을 ‘외교 참사’로 규정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총체적 국정 실패에 대해 국민께 사죄하라”고 부르댄다. 이미 불이 붙었는데, 불 끄려고 대드는 사람이 아무도 안 보이는 한심한 꼴이다.

문재인 정권 들어서 악화 일로를 걸어온 한일관계의 이면에는 어떤 요소들이 작용했을까. 그 시발점은 쇼 정치와 포퓰리즘을 탐닉하는 이 정권의 정치전략에서 비롯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선 지난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부가 일본과 협상하여 최종적 종결을 약속한 ‘한일일본군위안부 합의’를 뒤집어엎어 지지층 결집에 활용했다.

집권세력은 지난 1965년 6월 22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체결한 ‘한일국교정상화 조약 (한일기본조약)’까지 선동의 먹잇감으로 삼았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한일기본조약을 뒤집어엎어 강제징용에 대해 일본 기업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판결을 존중하며, 행정부나 입법부도 이 판결에 승복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취했다.

한일관계에 있어서 ‘가깝고도 먼 이웃’이라는 말보다 더 적나라한 표현은 없다. 일본은 역사적으로는 가까워지기가 어렵지만, 경제적으로는 밀접하게 지낼 수밖에 없는 이웃임에 틀림이 없다. 상당 기간 우리 정치인들이 인기영합 목적으로 일본의 귀싸대기를 때려도 그러구러 경제교류가 끊어지지 않았던 까닭은 분명했다. 이번 경제보복 사태는 일본이 더 이상 참지 않기로 했다는 신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전후 피폐한 이 나라 재건을 위해서는 일본과 화해해 도움을 받는 길뿐이었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고,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한없이 꼬여가는 위안부 문제를 서둘러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 결과물이 ‘한일협정’이고 ‘한일일본군위안부 합의’였다.

임진왜란 직전 일본을 다녀온 뒤 서로 딴소리로 팔도강산을 전란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파당정치꾼 황윤길과 김성일의 후예들이 지금 이 나라 안에 수두룩하다. 정치적 의도로 외교합의를 뒤집어엎었으면 상황을 반전시킬 책임도 확실히 져야 한다. 한일 정상외교밖에 돌파구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진짜 능력을 보고 싶다. 전투에서 이기더라도 전쟁에서 지기 십상인 이 게임은 위험하다. ‘기해왜란(己亥倭亂)’을 각오한 사람들의 비책은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