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과 ‘멋’ ‘풍치’를 갖춘 놀음… 1천500년 전 청년들은 대체 어떻게 놀았을까?
‘격’과 ‘멋’ ‘풍치’를 갖춘 놀음… 1천500년 전 청년들은 대체 어떻게 놀았을까?
  • 홍성식 기자
  • 등록일 2019.07.04 19:24
  • 게재일 2019.07.0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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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도(風流道)
신라의 청년들을 찾아서 ①

신라사회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한 화랑과 화랑정신은 1천 5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하고 있다. 그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경주에는 화랑교육원과 화랑마을 등 화랑정신을 교육하고 체험하는 장소들이 있다. 경주시 석장동에 있는 화랑마을 전시관에는 화랑을 재현한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신라사회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한 화랑과 화랑정신은 1천 5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하고 있다. 그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경주에는 화랑교육원과 화랑마을 등 화랑정신을 교육하고 체험하는 장소들이 있다. 경주시 석장동에 있는 화랑마을 전시관에는 화랑을 재현한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1818~1883)에 기대 설명하자면 이것은 ‘토대’인가 ‘상부구조’인가? 아니, 시간을 되돌려 150여 년 전 독일로 멀리 갈 것도 없다. 이 땅의 수많은 역사학자와 사상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은 분분하다.

혹자는 “충효와 유희가 결합된 한국 정신의 뿌리”라고 말하고, 다른 누군가는 “미륵신앙과 밀접한 한국 종교사상의 주요한 흐름”이라고 주장한다. 보다 젊은 학자들 가운데는 “최근 아시아는 물론, 유럽 전역을 휩쓰는 한류(韓流)의 출발점”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이전 세대에선 화랑도(花郞徒)와 동일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바로 ‘풍류도(風流道)’를 놓고 오가는 이야기들이다. 그렇다면 사전적으론 풍류도가 어떻게 정의되고 있을까?

‘원불교 대사전’의 경우 “풍류를 닦던 신라의 청소년 심신수련 조직. 화랑도(花郞徒), 낭가, 국선도(國仙徒)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신라 진흥왕대에 왕과 귀족의 자제로 조직된 이후 국가의 문무(文武) 인재를 이에서 취했다. 그 기원은 민족 고유사상으로 불교·유교·도교 등의 가르침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유습은 고려 이후에도 이어져 문화·예술 및 풍속에 영향을 미쳤다”고 쓰고 있다. 비교적 구체적이고 상세한 설명이다.

반면 또 다른 사전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풍류란 속되지 않고 멋스러우며 풍치가 있는 일, 또는 그렇게 노는 일을 말한다. 그러므로 풍류도라 함은 단순히 노는 것이 아니라, 인격의 도야를 목적으로 하여 멋스럽게 노는 것을 말한다. 즉 노는 것을 ‘도(道)’의 경지에까지 끌어올린 것을 이르는 것이다.” 이 주장은 이해가 어렵진 않지만, 다소 피상적이라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다. 이와 같은 풍류도를 둘러싼 갑론을박(甲論乙駁)과 설왕설래(說往說來)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지속돼왔고, ‘역사 관련 논쟁’이라는 특성상 어떤 학자도 선뜻 어느 한쪽의 견해에 손을 들어주기가 쉽지 않았다.

개인적 고백을 덧붙이자면 ‘풍류도’에 관해 쓴 몇 권의 책과 10편이 넘는 학자들의 논문을 꼼꼼히 읽고 검토했음에도 그 맥락과 핵심을 짚어내기가 힘겨웠다.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은 기자의 한계 탓이다. 하지만 이 난감함은 풍류도에 관해선 현재까지도 원체 다양한 이론과 견해가 충돌하고 있고, 아직까지 누구나 고개 끄덕일 ‘100%의 수긍’을 이끌어낸 학설이 없기 때문에 느껴지는 감정이기도 할 것이다.
 

“풍류 닦던 신라의 청소년 심신수련 조직”
“속되지 않고 멋스럽게 노는 일”
“다양한 사상· 이념 내포한 신라의 정신”
정설없는 다양한 학설로 존재하는 ‘풍류도’
그 기원과 핵심이념 추적
더불어 1천500년전 뜨거운 청춘들
‘화랑’의 삶과 정신도 재조명

◆ 사학자 최광식 “풍류도는 화랑도의 지도이념”

이처럼 복잡다단한 학계 풍경에서 구구한 부연 없이 ‘풍류도’에 관해 비교적 심플하게 정의하고 있는 역사학자 중 한 명이 고려대학교 최광식 명예교수다. 그는 ‘신라의 화랑도와 풍류도’라는 논문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신라시대에 활동했던 화랑도는 신라사회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그들의 지도이념이었던 풍류도는 신라의 정신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짤막한 문장을 통해 최광식은 풍류도가 토대가 아닌 ‘상부구조’였다고 설파한다.

학자에 따라 토착신앙, 불교, 유교, 도교가 화랑도의 사상적 배경이 됐다는 각각의 견해가 분분한 가운데 최광식은 화랑도의 지도이념, 즉 풍류도는 “그 어느 하나의 사상이나 종교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사상과 이념을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신라 멸망 이후에도 풍류도와 화랑도는 명칭과 사회적 기능 변화의 과정을 거쳐 고려로 계승됐다는 것이 적지 않은 역사학자들의 공통된 생각.

이런 발전적 계승은 ‘신라의 화랑도와 풍류도’의 논거(論據)처럼 풍류도가 토착적 고유 신앙을 기반으로 해 외래 종교인 유교, 불교, 도교에도 개방성과 포용성을 보임으로써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지지기반을 획득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 역사학자 김태준 “풍류정신은 화랑도의 바탕 사상”

앞서 말했듯 최광식은 “화랑도의 지도이념이 풍류도”라고 정의했다. 여기서 다른 하나의 단어가 자연스레 부각된다. 풍류도 혹은 화랑도와 유사한 개념으로 사용되는 풍월도가 바로 그것. 세간에선 ‘화랑도=풍월도’라고 받아들이는 게 일반적이다.

사학자 김태준은 이런 시각을 아래와 같은 문장으로 요약·정리하고 있다. 그의 논문 ‘화랑도와 풍류정신’을 통해서다.

“화랑에 대한 기록이 영성하여 모두 뚜렷한 뜻을 전달하지 못하는 가운데, 화랑의 사적을 전한 기록들이 반드시 ‘풍류’와 ‘풍류도’를 함께 전하고 있어 크게 주목된다. 그런데 이를 ‘삼국사기(三國史記)’는 풍류라 하고,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는 ‘풍월도’라 하였다. 같은 개념의 표현인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를 신라 당대의 상황에 맞춰 보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풍류도와 풍월도는 모두 화랑의 사상이자, 국선(國仙·화랑의 리더)의 정신이며, 동시에 나라를 흥하게 하고자 한 이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태준은 여기에 이런 주장을 덧붙이고 있다. “유·불·선 삼교를 포함한 정신이며, 사람들을 교화해 인간다운 삶을 살게 만든 사상이 바로 풍류도”라는 것.

김태준 역시 ‘화랑도와 풍류정신’에서 최광식과 유사한 어투로 화랑과 풍류도(풍류정신)의 관계를 요약하고 있다. 이런 문장이다.

“풍류정신은 화랑도의 바탕 사상이면서 화랑도를 일으킨 정신이었고, 지금껏 이어지는 민족정신의 바탕이기도 하다.”

경주 화랑마을 전시관에 ‘21세기 신화랑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국·내외 분야별 유명인사의 사진과 명언이 전시되어 있다.
경주 화랑마을 전시관에 ‘21세기 신화랑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국·내외 분야별 유명인사의 사진과 명언이 전시되어 있다.

◆ ‘풍류도에 관한 연구’는 곧 화랑도에 관한 연구

경주 지역에서 오랜 시간 동안 역사와 문학에 관해 연구해온 강석근 박사는 최근 기자와의 만남에서 “풍류도는 그 개념의 정리부터가 어려운 문제”라며 “분분한 학설과 다양한 개별 학자들의 주장을 하나의 의미망 안에 묶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조언을 들려줬다. 무시무시한(?) 어드바이스였다.

하지만 어떤 난제(難題)에도 해답은 존재하는 법. 풍류도에 관한 독서와 논문 읽기, 학자들의 조력(助力)을 받으며 앞으로 이어갈 연재기사의 방향을 대략적으로 설정할 수 있었다.

최광식과 김태준의 학설처럼 풍류도(풍류정신)와 화랑도는 서로 떼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런 차원에서 접근을 때로는 거시화(巨視化), 상황에 따라 미시화(微視化) 해보기로 한 것이다.

일단 가장 먼저 풍류도의 기원에 대해 살필 예정이다. 풍류도는 신라 진흥왕 시절 선발된 원화(源花)를 전신으로 하고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일부 사학자들은 “풍류도의 역사가 원화에 앞선다”는 의견도 내놓는다. 이에 각각의 사학자들이 어떤 근거로 자신의 학설을 펼치고 있는지 소개할 계획이다.

풍류도가 고대 신라에서 지녔던 위상과 종교와의 관계도 주요한 취재·탐구 대상이다. 신라는 씨족사회로 상호 협동하는 태도가 다른 어떤 고대국가보다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름다운 정신과 육체를 숭배하는 풍토도 강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가야국과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풍월주(風月主) 사다함은 육체와 정신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갖춘 인재였다고 알려졌다. 이런 ‘아름다움에 관한 숭배’가 어디에서 연유했는지도 밝혀볼 예정이다. ‘풍류도’와 ‘화랑도’란 어원의 뿌리를 찾아보는 것도 과제의 하나다. 소도제단(蘇塗祭壇)의 무인이 변화해 풍월주가 됐다는 학설과 고조선의 고유 신앙인 부루교단이 풍류도의 모태였다는 주장 등이 이와 관련된 취재 대상이다.

풍류도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됐는지에 관한 궁금증도 풀어보게 된다. 운영 주체가 민간에서 국가로 변화함으로써 체계적 조직화를 이룬 풍류도는 무리를 이끄는 몇몇 리더 아래 여러 개의 문벌(門閥)을 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품과 함께 덕(德)을 지도자의 으뜸 자질로 본 풍류도의 이념도 더불어 취재하게 된다.

‘풍류도’를 지도이념으로 신라사회의 리더로 활동했던 ‘화랑’이 자신들 행동의 금과옥조로 삼았던 ‘세속오계(世俗五戒)’에 관해서도 살피게 된다.

사군이충(事君以忠), 사친이효(事親以孝), 교우이신(交友以信), 임전무퇴(臨戰無退), 살생유택(殺生有擇)으로 요약되는 세속오계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 풍류도, 화랑, 풍월도를 찾아가는 의미 있는 여행

특정한 하나의 사상이나 종교에 경도되지 않고 시대의 다양성을 포용함으로써 신라의 청년리더였던 화랑의 지도이념인 된 풍류도. 사학자 김태준은 ‘화랑도와 풍류정신’을 통해 풍류도와 화랑이 당대에 가졌던 위상과 지향을 이렇게 요약했다.

“화랑은 20살이 못되는 젊은 소년들이 수련하는 무리였다. ‘국선’이나 ‘성인’으로 존중된 사례들이 역사 기록을 장식하고 있지만, 한편에서 보자면 단순히 젊은 무리들의 수련단체이기도 했다. (리더였던 준정과 남모의 갈등과 대립으로 인한) ‘원화’의 실패담에서 보는 것과 같은 젊은 청소년의 시행착오가 없지 않았으나, 사람을 감동케 하는 인격의 수련과 오랜 순례여행, 거기서 보고 들은 견문과 젊은이들의 우정이 화랑 풍류의 가장 중요한 성격이었을 것이다”

1천500년 전 신라를 해석하는 주요한 키워드인 풍류도, 화랑도, 풍월도의 뿌리와 줄기, 꽃과 열매를 찾아가는 흥미로운 여행이 이제 막 시작됐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애정 어린 비판을 기대한다.

글/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사진/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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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19-07-05 03:50:18
한국사와 세계사와의 연계는 가장 옳은 정답. 한나라이후 세계종교로 동아시아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잡아온 유교전통.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 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 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 최고 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 원)이 승계.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그리고 세계사를 반영 관습법적으로 교황윤허 서강대. http://blog.daum.net/macmaca/2575

윤진한 2019-07-05 03:36:27
한국은 유교나라임. 불교는 한국 전통의 조계종 천민 승려와 주권없는 일본 불교로 나뉘어짐. 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신도.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 일본항복으로 이들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은 없는상태임. http://blog.daum.net/macmaca/2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