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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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윔블던 테니스 대회에서 비교적 생소한 이름의 한국선수 한 명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영국의 윔블던 대회의 예선전은 본선에 들어가고픈 선수들의 전쟁터 같은 곳이다. 예선 통과는 사실상 본선보다 더 힘들 수도 있다. 여기서 예선에서 압도적인 스코어로 3승을 거두고 본선에 진출한 21살 권순우라는 선수의 과거 역정이 주목을 끈다.

권 선수는 메이저 테니스 대회에서 지금까지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선수였다. 그런 권 선수가 예선을 파죽지세로 몰아붙이고 본선에서 세계 9위의 선수에게 한 세트를 따내는 등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매 세트 접전이었다. 그가 비록 패하긴 했으나 세계 10위권 선수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탁월한 경기로 테니스 팬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전설의 스타 존매켄로 선수가 경기 후 권 선수에게 박수를 치며 앞으로 크게 될 선수라고 치켜세웠다는 소식이 들린다.

여기서 필자의 흥미를 끄는 것은 그가 주니어 시절 전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선수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제 그의 공격적 플레이가 완성되고 한국선수로는 드물게 강한 서브로 무장한 그의 플레이는 테니스 팬인 필자에겐 정말 감동적이었다. 창의적이고 공격적인 주니어 시절을 보내야 체육이든 예술이든 학문이든 어떤 분야이든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증명했다.

권 선수의 갑작스런 부각을 보면서 체육뿐 아니라 학문의 세계에서는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세계 학문의 각축장인 미국의 최고 명문대학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 교수들은 과거 주니어 때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과연 한국에서 대학예비고사 또는 수학능력시험에서 전국 1위를 하고 대학의 수석합격자가 유학 후 미국의 명문대의 교수가 되는 것일까라는 질문은 참으로 흥미로운 질문이다.

미국의 일류대학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채찍이론이라는 재고관리 이론으로 유명한 경영학과 황승진 교수는 로체스터라는 비교적 생소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한 후 30년 전 스탠퍼드 대학 조교수로 시작하여 종신직까지 받은 스탠퍼드 석좌교수이다.

아이비리그 대학인 브라운 대학의 기계공학 김경석 교수는 브라운 대학에서 공학박사를 받은 후 일리노이대학교 조교수 재직 중 국가젊은과학자상에 선발되면서 명문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칼텍, 브라운대학에서 정교수 제안을 받고 모교인 브라운 대학을 선택 정교수직에 오른 전설적 교수이다.

이 두 사람을 주목하는 이유는 이 두 분의 교수가 모두 대학 예비고사 수석이나 대학 수석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그들이 공부는 잘했어도 그들의 창의적 사고가 암기식 공부 방식에는 방해가 되었을지 모른다. 이는 권순우 선수가 주니어 시절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것과도 같은 맥락일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의 관찰로는 이 두 분의 교수는 꽤 머리가 좋긴 했지만 상당히 엉뚱한 곳이 있는 분들이었다. 유머가 풍부하면서도 날카로운 예지력과 창의력, 판단력을 소유하고 있는 교수들이었다. 엉뚱한 토론을 즐겨하며 창의적인 생각을 끊임없이 하는 분들이었다.

또 한 분 최근 화제가 된 미국 MIT 대학의 김상배 교수가 있다. 김 교수는 연세대 기계과 출신이다. 그 역시 수능 최고 점수하고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그의 창의력은 스탠퍼드 박사과정 학생 때 만든 스티키봇(Stickybot)이 타임즈 최대 발명품으로 꼽힐 정도였고 당연히 MIT 같은 초일류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권 선수의 경우도 그리고 열거한 미국 명문대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교수들을 예로 볼 때, 어려서 주니어 시절 좀 더 창의적이고 과감한 사고방식이 큰일을 낼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한국의 초중등 교육에 참으로 소중한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