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안녕하세요. 먼저 접수부터 도와드리겠습니다. 전라도에서 오셨습니까?”

지난 주 토요일 장맛비가 내리는 와중에 산자연중학교에서는 2020년 전입학 전형을 위한 설명회가 열렸다. 작년까지는 120명이 넘는 전국 각지의 학부모께서 학생들의 행복 교육을 찾아 학교로 오셨다. 학부모의 간절한 마음을 안 하늘은 매년 좋은 날씨를 내려주었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장마가 늦어지면서 2014년 설명회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비가 내렸다. 기상청은 200㎜를 예보했다. 일기예보가 틀리기를 기원했지만, 하늘은 새벽부터 세찬 빗줄기를 쏟아부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설명회 시작 시간인 2시가 가까워질수록 빗줄기는 약해졌고, 급기야 2시를 전후해서는 잠시 비가 그쳤다는 것이다. 날씨 때문인지 오전까지만 하더라도 설명회장의 분위기는 예전과 달랐다. 12시 전후로 운동장에 차들이 많이 찼던 예전과 달리 1시 30분이 지나도 열 대 안팎의 차들만이 운동장에 점처럼 서 있었다.

그래도 산자연중학교 교사들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 희망에 대한 답을 하늘이 먼저 주었다. 1시 30분이 지나면서 비가 잦아들었고, 그것을 신호로 차들이 꼬리를 물고 들어왔다. 접수를 위한 줄이 서고, 선생님들도 바빠졌다. 다과를 준비해 둔 식당이 가득 찼고, 이곳저곳에서 상담이 진행되었다. 접수대에서 참석자 현황이라고 적힌 쪽지가 왔다. 93명이라는 숫자와 함께 학년별 참석자 현황이 적혀 있었다. 메모를 읽는 와중에도 차들이 계속 들어왔다.

시작을 앞두고 접수대로 가서 집계 현황을 파악했다. 필자는 접수된 주소를 보고 많이 놀랐다. 서울, 인천, 경기, 부산까지는 그래도 지금까지 계속 보던 지역인데, 이번에는 광주, 익산과 같은 전라도 지역의 주소가 보였기 때문이다. 억수 같은 장맛비를 헤치고 오셨을 그 분들의 정성과 간절함을 생각하며 필자는 스스로 각오(覺悟)를 새롭게 하였다.

말이 학교 설명회지 산자연중학교 학교 설명회는 전국에서 오신 학부모님들과 함께 ‘희망 교육’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이다. 그래서 필자는 산자연중학교에 대한 정보보다는 자녀 교육에 도움이 되는 교육 이야기를 더 많이 준비한다. 이야기는 언제나 현 교육에 대한 반성과 사과로 시작한다. 필자는 참회(慙悔)의 마음으로 “근대 교육을 재판합니다”라는 외국 영상을 제일 먼저 튼다. 아래 내용은 영상 내용 중 일부를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상략) 시대에 역행하는 교실에서 자신의 재능은 발견하지도 못한 채 자신이 바보같다고 생각하고 쓸모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고, 더 이상의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저는 학교를 법정에 세워 기소합니다. 창의성을 죽이고, 개성을 죽였으며, 지적으로 학대해왔습니다. 학교는 오래 전에 세워진 기관이며, 이제 시대에 뒤떨어져 있습니다 (하략)”

동영상을 보는 내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탄식과 한숨 소리에 필자는 다시 죄인이 되었다. 왜냐하면 영상의 내용이 틀리지 않기 때문에. 자신들의 정치적 입맛대로 자립형 사립 고등학교들을 없애려는 교육감들, 아니면 “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라고 하면서 대안학교 학생들은 빼고 있는 교육부 장관이라도 나서서 동영상의 내용이 잘못 되었다고 반박해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이 나라 교육 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위증(僞證)은 못할 것이다.

1시간 30분가량의 설명회 시간은 필자에겐 새로운 다짐의 시간이 된다. 설명회가 끝나면 학부모님들과 개별 면담을 한다. 올해는 예년과 다르게 중학교 재학생 학부모님들의 참석률이 높았다. 그 분들의 하나같은 얘기는 자유학기(년)제에 대한 성토(聲討)였다. 물론 모든 학부모들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달콤한 자유학기(년)제 이후에 더 살벌해지는 학교 이야기를 교육 당국은 꼭 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