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좌식문화 외국인엔 불편
글로벌 관광객시대 흐름 따라
업소마다 입식좌석 교체 바람
경북도, 160억 지원사업 추진

#1. 지난달 포항에서 열린 국제불빛축제에 초청받아 포항을 찾은 러시아 대표들이 가장 곤욕을 치른 건 식당의 좌식 문화였다. 이름난 음식점을 찾았던 이들이 의자가 있는 입식이 아니라 방바닥에 앉아서 식사해야 했던 것. 익숙하지 않은 자세라 식사 내내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이어 송도의 한 횟집으로 이들을 초대한 이강덕 포항시장은 이런 이야기를 전해 듣고선 식당 측에 의자에 앉아 식사할 수 있도록 요청, 식당에서 테이블과 의자 30여 개를 준비하는 소동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2. 안동에서 농산물 유통 및 무역업을 하는 권모(49)씨는 최근 외국 바이어들과 안동의 한 한우 갈비집을 찾았다. 그 식당은 모두 좌식으로 이뤄져 있었고 바이어들은 식사 내내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불편해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권 씨는 외국 바이어들과 식사할 때면 입식이 있는 식당을 찾아 예약하고 있다.

온돌문화의 발달로 300년 넘게 우리나라 고유문화로 자리 잡았던 ‘좌식(坐式)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입식(立式)문화’가 생활 속에 자리잡아가고 있다.

우리에겐 익숙한 좌식 문화이지만 외국인들에겐 생소하면서도 불편하다고 여긴다. 이 때문에 주요 관광지 식당에선 이미 좌식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좌식 식당이라고 해도 입식 테이블이 주를 이루고 좌식 테이블이 일부 남아있을 정도다. 특히 외국인의 경우 신발을 벗는 것이 익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허리와 척추, 고관절에 부담을 주는 자세란 점이 부각되면서 좌식을 꺼리기 때문이다.

한우를 전문 취급하는 포항 죽도동의 만포한우갈비도 개업 후 줄곧 좌식뿐이었으나 최근 식당 내 절반은 테이블과 의자를 갖췄다. 만포한우갈비 관계자는 “손님들 사이에서 음식을 앉아서 먹는 게 허리나 다리가 아프다는 의견이 많아서, 최근 내부 구조를 입식 좌석으로 바꿨다”며 “이후 손님들의 반응이 좋았다. 외국인 손님들도 더러 오는데, 확실히 앉아서 먹는 것보다 편하다고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포항의 대형 횟집들 역시 최근 트렌드에 맞게 좌식보다는 의자에 앉아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입식 좌석으로 내부 구조를 바꾸고 있다.

이런 입식 바람은 좌식이 당연시 여겨졌던 장례식장, 경로당, 심지어 불교 사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3월 문을 연 서안동농협 장례식장은 입식, 좌식, 혼합형(입식+좌식) 빈소를 골고루 구성했다. 특실 한 곳은 100여 개의 입식 테이블과 의자를 갖췄다.

서안동농협 장례식장 관계자는 “도시를 비롯해 생활환경 자체가 좌식에서 입식으로 바뀌고 있어 장례식장도 그에 맞춰 바꿨다”고 설명했다.

이런 추세에 맞춰 경북도는 도내 음식점과 숙박업체 등 관광 사업체 300여 곳에 160억원을 지원해 좌식 식탁을 입식으로 교체해주는 ‘입식 좌석 개선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경북도문화관광공사가 진행하고 있는 ‘2019 경북도 관광서비스 환경 개선 지원 사업’은 업소당 최대 2천만원(자부담 10%)을 지원한다.

지원 대상은 주요 관광지 인근에 있거나 관광객이 많이 찾는 음식업소 밀집 지역을 우선 지원한다. 토지와 건물이 본인 소유인 자영업자와 법인, 건물을 임차해 영업 중인 업체가 대상이다. 임차업체의 경우 시설개선 사항과 사업 완료 후 같은 업종을 3년간 운영할 수 있도록 건물 소유주로부터 동의를 얻어야 한다.

대상에 선정되면 지원금을 받아 바닥철거를 비롯해 벽체하부패널 및 천정몰딩, 바닥타일, 천정도장, 문, 창호, 조명, 도배, 테이블, 의자 교체에 사용할 수 있다. 경북도 관계자는 “경북을 찾는 여행자를 위한 서비스 개선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관광산업을 활성화하고 골목상권 활성화에 작은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배영동 안동대학교 인문예술대학장은 “지역에 따라 온돌의 보급 시기는 다르지만 우리나라엔 17세기부터 돌을 달구어 방을 데워 난방하는 구조가 차츰 확대돼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이를 온돌이라는 이름으로 정착됐다”며 “온돌은 혈액순환을 촉진해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해주고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등의 장점 때문에 현대 서구화된 생활 속에서도 돌침대, 온수매트 등의 온돌문화는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현대 사회인들의 생활이 방바닥에 앉아서 생활하는 것보단 의자에 앉아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좌식의 불편함을 많이 느끼게 됐다”며 입식 문화의 확대 배경을 설명했다. 좌식 생활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도 입식 문화가 확산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하승아 안동병원 재활의학과장은 “바닥에 오랫동안 앉아 있거나 다리를 벌리고 앉는 ‘양반다리’의 경우 허리가 굽는 등의 자세가 불량해져 척추변형이 일어날 수 있다”며 “특히 디스크환자의 경우 더욱더 빠르게 척추가 변형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는 점도 입식 문화를 북돋우는 요인이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한 해 1천300만 명에 달한다. 좌식문화를 공유하는 중국인·일본인 관광객을 제외해도 300만명이 넘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의 좌식문화를 낯설어하는 셈이어서 입식문화 확산은 이어질 전망이다.

/손병현기자 why@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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