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섭변호사
박준섭 변호사

필자는 지금부터 10여 년 전에 영국이 낳은 세계적 신학자 니콜라스 토마스 라이트의 ‘역사적 예수의 도전’이라는 글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책의 결론부에서 근·현대가 끝이 나고 새로운 세상이 오고 있는데 이미 세속화된 세상은 더 이상 신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종교개혁시대에 루터와 캘빈 등 개신교도들이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구호 아래 새롭게 성경을 해석하면서 근대세계를 설계하고 만들어 가는데 기여했던 것처럼 자신은 앞으로 곧 다가올 미래의 새로운 세상에 기독교인이 다시 기여하기 위해 ‘1세기 기독교’로 돌아가 성경을 다시 읽는다고 했다.

필자는 그때 새로운 문명사적 전환이 오고 있다는 것과 기독교가 그것을 준비한다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4차산업혁명이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는 일상어처럼 돼 버렸고 4차 산업혁명이 가지고 올 문명사적 변화, 곧 근·현대가 끝이 나고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것이 이제는 당연하게 들리는 시절이 됐다. 최근에 그는 바울신학을 다룬 ‘바울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라는 두 권의 대저서를 세상에 내놓았다.

필자는 그가 1세기 기독교로 돌아가 새로 성경을 읽으면서 얻은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독교적 비전을 무엇인지 알려고 기다려오던 중이었다. 그는 미래를 위한 바울의 의도들을 헬라어로 카탈라게, 즉 화해라는 단어로 제시했다. 그는 고린도후서 5장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이 기독인들에게 하나님과 화해하고 서로, 그리고 피조세계와 화해하라고 하는 임무를 맡겼다고 했다.

종교개혁 이후에 기독교는 인본주의와 협력과 경쟁을 하면서 근·현대를 만들어 왔다. 그들이 만든 세상은 주체를 중심으로 하는 개인의 발견이었고 이를 근거로 주체인 자신들을 넘어 세계로 확장하는 역사를 만들어 왔다. 이 과정에서 서구는 계몽주의·자본주의를 확장하기 위해 식민지 경쟁을 하다가 1,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하고, 자본주의, 사회주의가 냉전의 대립 속에서 경쟁했다. 사회주의가 몰락한 이후에는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도 민족과 종교갈등으로 여전히 세계는 곳곳에서 전쟁 중이다. 세계는 이제 다가올 문명이 타자를 배제하면서 자기를 확장해 나가는 문명은 아니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과연 한국기독교 교회는 다가올 새로운 세상을 위해서 대한민국과 세계에 어떤 기여를 하여야 할까? 한국 기독교는 먼저 어떠한 고난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화해의 정신으로 남한의 좌우대립, 진보·보수의 분열과 갈등을 멈추게 하는데 헌신해야 한다. 나아가 반드시 남북한이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것을 성취해 냄으로써 다음 문명의 비전이 화해라는 것을 세계에 분명히 제시하는 선도국가가 돼야 한다.

이는 한반도가 지난 세기에 식민지였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경험을 동시에 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남한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대표되는 근대화를 이뤄낸 곳이다). 또 그 이념갈등으로 전쟁까지 하고 이념의 대립이 끝이 난 시대에 아직도 한반도 이념으로 분단돼 근대의 이상과 모순과 미래의 가능성을 모두 품고 있는 용광로와도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남북한이 평화적 통일을 이루는 사건이 과거가 지나가고 새로운 미래가 도래했다는 하나의 문명사적 사건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 기독교는 새로워진 기독교 정신으로 여기에 기여해야 한다.

한기총의 전광훈 목사에 대한 일련의 사건들은 한국기독교가 이 미래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숙제가 아주 많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근대 초기에 한국의 기독교는 민족의 희망 공간이었다. 그 곳에서 민족의 지도자들이 키워졌고 그들이 우리 근대를 만드는 중심축들이 됐다. 한국 기독교가 가진 모든 누추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선배세대들이 그들 시대에 기여한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위해 한국 기독교가 더 위대한 기여를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