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

최근 포항은 연구개발특구, 첨단과학비즈니스벨트 등 그동안 유치에 실패했던 사업들 대신 ‘강소연구개발특구’ 지정에 성공하였다. 포스텍과 포항산업과학연구원을 중심으로 ‘첨단신소재’ 분야의 혁신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포항은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철강’을 오래 전부터 공급해온 가장 원천적인 ‘소재’의 생산기지였던 만큼 ‘소재’라는 말이 붙은 특구를 가볍게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포항은 보다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소재가 최종제품으로 탈바꿈하기까지 단계별로 부품, 반제품, 최종제품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생산 공정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모든 제품의 생명주기와 재고관리의 시간만큼은 크게 단축되었다. 과거처럼 단일 소재가 더 이상 단일 제품군에만 쓰이지 않게 되었고 유일무이한 핵심소재가 아닌 한 시장지배력도 완성품업체가 소재업체보다 우위에 서게 되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 결국 어떠한 소재기업이라도 종전과 같이 시장의 변화와 다양화에 무관심해서는 생존하기 힘든 시대가 왔다.

포항은 그동안 ‘철강’ 소재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았다. 지금까지 소재 생산업체들은 시장 즉, 소비자 기호와 감성 변화 등은 완성품 제조업체의 몫이라 여기고 그저 자신의 입맛대로 소재를 공급하면 그뿐이었다. 그러니 부품이나 반제품, 부분품을 만드는 중간재업체가 소재를 가공, 조립할 때 어떠한 불만이 있는지도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결국 자동차, 조선, 건설자재 등 최종 공급업체들만이 극심한 시장의 변화를 조기에 감지하며 현실적인 전략적 대응체계를 구축했을 뿐이다.

그러는 동안 전 세계는 하나의 네트워크로 이어지고, 소비자들의 감성과 기호는 매우 다양해졌다. 가격이 싼 것만으로 통하는 시대는 지났다. 우리는 매일같이 신제품이 쏟아지고 그에 적합한 신소재도 실시간으로 진화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자동차산업이 환경규제에 대응하여 초경량 소재로 철강을 대체하는 가운데 가전부터 항공우주분야까지 아우르는 고기능성과 범용성을 지닌 첨단신소재 시장의 수요는 폭발적인 성장을 거두고 있다. 이 치열한 경쟁분야인 첨단신소재를 연구 개발하고 이를 통한 혁신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최적의 특구로 포항이 선정된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포항은 지금까지의 연구개발론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의 신소재는 단지 개발만 하고 활용방안을 전방산업에 맡겼던 종전 소재분야의 방식만으로는 살아남기 힘들다. 연구 개발단계부터 그 신소재가 어떤 시장과 제품에 사용될 것인지도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 소재사용기업의 필요나 소비자시장의 수요를 면밀히 파악하고 이에 부합하는 최적의 첨단신소재를 개발해야만 한다. 즉 무엇을 연구할까가 아니라 어디에 어떻게 쓰일 연구인가를 고민해야만 한다. 음식점의 소재라고 할 수 있는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가조차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무농약 채소라며 흙이 묻은 채로 식당에 넘겼지만, 이제는 식당에 따라 필요한 규격대로 세척하고 다듬어 납품하는 시대가 되었음을 깨달아야만 한다.

모처럼 강소특구로 지정되어 기회를 잡게 된 포항이 첨단신소재를 개발하고 이를 이용한 완성품을 지역에서 생산하여 팔아야만 지역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6개 강소특구 가운데 반제품이나 부품분야의 특구들에 대해서는 더욱 자세히 살펴보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다른 특구가 필요로 하는 맞춤형 소재까지 포항에서 생산하는 확장성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소재수요처에 대한 면밀한 관심과 소통을 통해 그들이 요구하는 맞춤형 첨단신소재를 연구 개발하고 그것을 포항이 생산하여 공급할 수 있게 되는 순간 이미 포항에는 혁신생태계가 구축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