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비극적 6·25 전쟁 발발 예순아홉 돌을 맞는다. 남북, 북미 회담으로 연결된 극적 변화 붐을 타고 ‘평화’에 대한 갈망은 더욱 깊어진 반면, 실질적인 안보위기는 전혀 해소되지 않고 있다. 그런 가운데 정말 심각한 문제는 우리 국민들의 정신적 무장해제 현상이다. 이렇게 무심히 해체돼선 안 된다. ‘평화’가 목전에 다다를 때도 우리는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한없이 깊어지고 있는 ‘안보 불감증’이 걱정이다.

북한 소형 목선이 삼척항에 들어왔던 15일 오전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박한기 합참의장 등이 참석한 대책회의가 합동참모본부 지하벙커에서 열렸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그런데도 국방부와 합참은 이틀 후인 17일 백그라운드(익명) 브리핑에서 북한 소형 목선의 발견 장소에 대해 삼척항 방파제 부두가 아닌 ‘삼척항 인근’이라고 밝혔다. 또 북한 소형 목선이 실제 엔진을 가동해 항구로 진입했는데도 “표류해서 발견하기 힘들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청와대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를 놓고 정치적 파장이 일파만파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

두 명의 북한 어민 중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북한으로 돌려보낸 두 명에 대해서도 설왕설래가 나온다. 그들이 정말 귀순한 두 명의 탈북을 방조한 민간인이었다면 북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게 분명하다. 북한 비핵화의 가치를 몰라서가 아니다. 아직 아무것도 바뀐 게 없는데, 북한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우리 군마저 비굴하고 비겁한 행태를 보태기 시작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중대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온 국민의 생존이 걸린 안보는 추호도 양보할 수 없는 중대 영역이다. 안보는 리허설이 있을 수 없다. 한번 깨지면 다 깨지는 엄중한 게임이다. 국군통수권자가 군인들 앞에서 강조해야 할 말은 ‘최강의 국방력’이지 ‘평화의 가치’가 아니다. 로마의 전략가 베게티우스가 한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고 한 말은 영원한 금언이다.

현 정권은 군 복무 기간을 21개월에서 19개월로 단축하고 위수지역 확대, 병사 근무시간 외 핸드폰 사용 허용 등 파격적인 군사 정책을 펼쳐왔다. 교과서에는 ‘자유’라는 단어를 빼고 ‘민주주의’라고만 쓰게 해 ‘사회민주주의’를 포괄했다. 25년 전엔 북한의 ‘서울 불바다’ 발언에 우리 국민이 쌀과 라면을 사재기하느라 법석을 떨었다. 기껏 ‘말 폭탄’ 하나에 벌벌 떨던 같은 국민이 지금은 ‘완성된 핵’들을 머리에 이고도 무덤덤하다. 아빠에게 “6·25 전쟁은 북침 아닌가요?”라고 묻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는데, 이를 어째야 하나. 지금 이 나라의 백성들은 끓는 물 안에서 천천히 죽어가는 딱한 개구리(boiling frog) 신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