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빨간 풍차’라는 뜻의 물랭루즈(Moulin Rouge)는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의 번화가 클리시 거리에 있는 댄스홀이다. 1889년 개장한 댄스홀인 이곳에서 펼쳐진 ‘카드리유(프렌치 캉캉)’라는 춤 공연은 한때 세계 최고의 명성을 누렸다. 옛날 중앙정보부가 세운 국제관광공사 소유의 호텔이었던 워커힐의 ‘캉캉 쇼’도 유명한 고급 관광상품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하이힐과 화려한 무용복 차림의 무희들이 집단으로 다리를 들어 올려 팬티를 아슬아슬 보여주는 댄스공연 ‘캉캉 쇼’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은 없다.

자유한국당이 범보수 진영의 인적기반 강화를 위해 외연 확장에 적극 나섰다. 최근 외연확장과 총선 대비를 위해 인재영입위원회를 출범하고 위원장에 이명수 의원을 임명했다. 황교안 대표는 “삼고초려, 오고초려, 십고초려를 해서라도 반드시 인재를 모셔와 주길 바란다”고 신신당부했다.

인재영입위는 사회 각계각층의 2천 명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1차 영입대상으로 각계인사 164명을 선정했다는 소식이다. 그 명단에 박찬호 한국야구위원회(KBO) 국제홍보위원과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자인 이재웅 쏘카 대표가 포함된 것으로 전해지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당 인재영입위는 이들을 상대로 영입교섭을 진행해 늦어도 9월 말까지는 결과물을 내놓겠다는 방침이다.

지난해에도 한국당으로부터 비상대책위원장 직을 제안받은 바 있는 이국종 교수는 그러나 이번에도 “병원 내 정치도 잘 못 한다”며 “과대평가해 주신 것 같다. 그런 주제가 못 된다”고 사양 의사를 밝혔다. 한국당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이 교수는“한국당보다는 민주당 분들과 더 자주 접촉한다”고 선을 그었다.

박찬호 위원의 국내 매니지먼트사인 ‘팀61’의 정태호 대표는 “박찬호는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박찬호는) 정치할 의사도 전혀 없고 지금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고 전했다. 말하자면 한국당이 일방적으로 명단을 작성하고 일부 유명인사들의 이름을 흘려 애드벌룬을 띄워본 셈이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19대 총선 때는 귀화 여성 이자스민 의원을, 20대 총선 때는 유명 바둑기사 조훈현 의원 등을 비례대표로 영입했다. 21대 총선을 앞두고도 ‘깜짝 발탁’ 전략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역구마다 줄을 선 인물들이 넘쳐나는 더불어민주당은 비교적 느긋하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객관적이고 투명한 공천 룰을 마련하고 상향식 공천시스템을 완전히 뿌리내려 총선 승리의 발판을 마련할 것’이라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한국당의 인재영입 안간힘을 바라보는 민심은 어떨까. 지명도가 높은 인기인들을 영입해 관심을 높이는 일이 나쁠 까닭이 없다. 그런데 유명인들을 명단에 욱여넣고 알 만한 이름들을 치마폭 들어 올리듯 슬쩍 흘리는 자유한국당의 행태는 측은하기도 하고, 짜증을 부르기도 한다. 구멍 뚫려 새는 바가지를 들고 우물 앞에 선 모습이 연상된다. 무너지고 부서진 무대를 고칠 생각도 없이 철 지난 ‘캉캉 쇼’나 기획하고 있는 어설픈 풍경이다.

문재인 정권 잘못하는 것들 줄줄이 꿰어 들고 민중을 향해 꽹과리 치며 흔들어대는 것 말고 자유한국당이 제대로 하는 게 뭔가. 무엇 하나 정리 정돈된 것 없는 갈등 시한폭탄들을 그대로 두고 정부·여당의 실정(失政) 부풀리기에만 여념이 없는 형편 아니던가. 국민은 아직 자유한국당에게 권력을 되돌려 맡길 준비가 돼 있지 않다. 미더운 무대도 마련해놓지 않은 마당에 무슨 꿍꿍이로 ‘캉캉 쇼’ 티켓이나 돌릴 궁리를 하고 있나. 중도 민심을 확실히 돌려세울 미더운 정책으로 무장된 건강한 조직으로 혁신하는 일부터 빨리 마무리짓는 게 맞다. 그래서 천하의 인재들이 스스로 몰려들게 만드는 게 자유한국당이 가야 할 바른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