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중앙교회 금요에바다의 밤서 간증
“내가 북한 땅을 사랑한다.
내가 이 땅을 회복시킬 것이다.
이 사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라”

21일 포항중앙교회에서 간증하는 탈북민 출신 마요한 목사.
21일 포항중앙교회에서 간증하는 탈북민 출신 마요한 목사.

탈북민 출신 마요한 목사(서울 새희망나루교회)는 21일 북한 회복과 복음통일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 목사는 이날 오후 8시부터 포항중앙교회 본당에서 진행된 ‘통일 선교를 위한 간증집회’에서 ‘하나님의 은혜’란 제목의 간증에서 이같이 말했다.

마 목사는 “북한 고등학교 역사교사와 무역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 보다 북한 밖의 소식을 들을 수 있어 자유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며 “당시 1990년대 중·후반 북한이 국제적 고립과 자연재해 등으로 극도의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고난의 행군’ 시절 중국으로 탈북했다”고 북한을 탈출한 간증을 시작했다.

마 목사는 “목숨 걸고 중국에 왔지만 생각보다 자유를 느끼지 못하던 중 한국에서 온 선교사로부터 신앙훈련을 받으면서 새로운 자유를 알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성경이 너무 재미있어 ‘성경 100독 반’에서 성경 100독을 했다”며 “마지막까지 성경 100독 반에 남아 있었던 사람은 저 혼자 뿐이었다.”고 추억했다.

마 목사는 “그래서 제가 잘 나서 하나님으로부터 그런 특혜를 받은 사람으로 착각을 했다”며 “성경 속의 믿음의 선진들의 공통점이 ‘고난’이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고난을 달라고 기도했다”고 간증을 이어갔다.

마 목사는 “지나고 나서 보니 그것은 더 크게 쓰임 받으려는, 더 높아지려는 저의 야심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회개했다”고 고백했다.

마 목사는 “2001년 어느 날 탈북 청소년들에게 성경공부를 시키던 중 중국 공안들이 들이닥쳐 모두 체포됐다”며 “중국 변방부대의 독방에서 지냈지만 매일 기도하고 찬양했다”고 들려줬다.

마 목사는 “옥중에서도 기도하고 찬양할 수 있었던 것은 성경에서 읽은 바울과 실라에게 임한 ‘빌립보 감옥의 기적’ 때문이었다”며 “10일, 20일, 30일이 지나도 빌립보 감옥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40일이 가까이 올 때부터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마 목사는 “39일째 되던 날 중국 군인으로부터 ‘내일 북송된다’는 통보를 받고 갑자기 앞이 캄캄해졌고, 감당할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왔다”며 “그날 밤 한숨도 잘 수 없었다. 하나님을 감사하며 찬양하던 저의 입술에서는 ‘하나님, 살아 계신 것이 맞느냐’며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다”고 그 때의 불안한 심정을 전했다.

마 목사는 “이튿날 북한으로 이송됐다”며 “북한 보위국 감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그들 가운데 반짝이는 한 청년의 눈빛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마 목사는 “내가 살 수 있는 확률은 0%였다. 신앙생활과 관련된 죄목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른 감옥으로 끌려가지 전 그날 밤 그 청년에게 다가갔다”며 “그 청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실한 청년이었다. 그 청년은 중국에서 북한 지하교회(의 사역자)로 파송 받으려던 중 붙잡혀 북송됐다고 했다. 그 청년과 이야기를 나눈 뒤 다음 날 5개의 독방이 있는 숲속으로 끌려갔다”고 했다.

기도하는 마요한 목사.
기도하는 마요한 목사.

마 목사는 “5개의 독방 중 한 곳에 들어갔더니 한 사람이 있었다”며 “인원이 많아 한 방에 두 명을 넣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마 목사는 “먼저 독방에 온 그 분은 비참했다.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목이 한줌 밖에 되지 않았다. 분노가 일어났다. ‘하나님, 왜 이곳에 넣었습니까’라며 항의했다. 노동 후 그 분의 허벅지를 봤다. 역시 한줌 밖에 되지 않았다”며 “그러나 그 분의 얼굴을 봤을 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천사를 보는 것 같았다. 한 점의 수심도, 그늘도 없었다”고 전했다.

마 목사는 “그 때 하나님이 ‘이 사람은 나의 백성이다’란 마음을 주셨다. 그래서 그 분과 손바닥으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 분은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는 분이었다. 그 분을 본 뒤 형편없는 나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10여일 그분과 함께 감방에서 지냈고, 이후 밖으로 불려나간 그 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마 목사는 “나도 3개월 뒤 그 분의 모습을 닮아가기 시작했다”며 “중국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모두 쓰라는 지도관의 말에 기도했고, 하나님이 ‘네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쓰라’는 마음을 주셨다. 그래서 A4용지 150장을 썼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썼다. 이것을 본 지도관이 예수님을 믿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고 당시의 심경을 상세히 전했다.

마 목사는 “지도관은 내가 쓴 것을 본 뒤 ‘너희 같은 예수쟁이는 죽어도 변하지 않는다. 내가 너희 같은 것들을 반드시 죽인다’고 했다. 내가 마음속으로 한 기도(지도관이 예수 믿게 해 주세요, 이 땅을 회복시켜 주세요)까지 그 지도관은 알고 있었다”고 했다.

마 목사는 “취조가 마무리 됐을 땐 ‘주님, 저를 데려가 주세요’라는 기도를 드렸더니, 주님께서 ‘아직 때가 아니다. 네가 할 일이 있다’란 마음을 주셨다”고 전했다.

찬양하는 포항중앙교회 교역자들과 경배와찬양팀.
찬양하는 포항중앙교회 교역자들과 경배와찬양팀.

그로부터 2개월 뒤 기적이 일어났다고 했다.
마 목사는 “내가 시신처럼 됐을 때, 일시적으로 나를 석방해 고향으로 가게했다”며 “그 때 ‘하나님, 왜 저를 살리신 것입니까’라고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런 나에게 ‘내가 특별해서 살릴 것이 아니다. 남보다 더 믿음이 좋아서 살린 것이 아니다. 내가 이 땅을 사랑한다. 이 땅을 회복시킬 것이다. 이 사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라’란 마음을 주셨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마 목사는 “탈옥하면 공개처형한다는 지도관의 말이 있었지만, 그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가석방 당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떠올라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는 확신이 있어 다시 목숨 걸고 탈북해 한국에 올 수 있었고, 주님의 사명자의 길을 걷을 수 있었다”고 했다.

마 목사는 “돌이켜 보면 하나님의 은혜였다”며 “하나님은 좌절하고 원망하던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일으켜 세워셨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고 했다.

마 목사는 간증 뒤 “우리 민족을 회복 시켜 주소서, 북한을 회복시켜 주소서, 복음통일의 역사를 감당하길 원합니다. 굳건히 붙들어 주셔서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게 하소서, 거룩한 은혜를 풍성하게 채워주소서”라고 기도했다.

찬양하는 포항중앙교회 교인들.
찬양하는 포항중앙교회 교인들.

교인들은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 없네 호흡마저도 다 주의 것이니~ 세상 평안과 위로 내게 없어도 예수 오직 예수 뿐이네~ 크신 계획 다 볼 수도 없고 작은 고난에 지쳐도~ 주께 묶인 나의 모든 삶 버티고 견디게 하시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나의 모든 것 다 주께 맡기니~ 참된 평안과 위로 내게 주신 주 예수 오직 예수 뿐이네~”란 ‘오직 예수 뿐이네’를 반복해 불렀다.

교인들은 이어 두 손을 들고 북한 복음화와 복음통일을 위해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다.

통일 선교를 위한 간증집회는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하늘의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우리의 죄악 용서 하소서 이 땅 고쳐주소서~ 이제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이 땅의 무너진 기초를 다시 쌓을 때~ 우리의 우상들을 태우실 성령의 불 임하소서~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진리의 말씀 이 땅 새롭게 하소서~ 은혜의 강물 흐르게 하소서 성령의 바람 이제 불어와~ 오 주의 영광 가득한 새날 주소서~ 오 주님 나라 이 땅에 임하소서~”란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를 부르는 교인들의 합창에 이어 축도로 마무리 됐다.

교인들은 “우리 동포들이 사는 북한을 회복 시켜 달라, 복음통일을 이뤄달라, 복음 때문에 핍박받는 교인들이 없게 해 달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을 비롯해 북한의 모든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천국가게 해 달라, 북한도 경제적으로 부강하게 해 달라고 사생결단으로 눈물로 기도했다”고 입을 모았다.

/김규동기자 kdkim@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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