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은 이 영화에서 누구냐?

송강호 분 기택의 가족 기우는 명문대 다니는 친구 소개로 아마도 평창동일 부잣집 여고생 영어과외 교사로 들어간다.

평창동 사람들은 이 영화 안 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 느긋하게 보기에는 꽤나 불편한 영화라고나 할까. 나도 옛날에 그 동네 과외 아르바이트 하는 친구 얘기를 들었는데, 집안에 에스켤레이터가 있다던가. 수영장 같은 건 말해봐야 빈축이나 살 것이고, 워낙 흔한 얘기여서 말이다.

이 기택 가족은 한 마디로 말해 ‘악’하기 그지없다. 대학 졸업장 위조해서 과외 교사로 들어가 놓고 모자라 자기 동생을 외국 명문대 미대생으로 꾸며 그집 아들 미술 과외 교사로 끌어들인다. 아버지는 운전기사로, 어머니는 가정부로 끌어들이는데, 자신들이 모두 한 가족이라는 사실은 물론 감추면서다.

이렇게 해서 기택의 가족은 이선균 분 동익과 조여정 분 연교의 세 식구한테 달라붙은 ‘기생충’ 같은 존재들이 된다. 한 몸에 회충, 촌충, 편충, 간디스토마 등등 여러 기생충이 영양분을 빨아먹듯 빼먹는 셈이다.

이참에 사전을 보니, 광절열두조충이라는 희귀종 기생충은 몸길이가 자그마치 10미터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또 한 3미터쯤 되는 이 기생충으로 병원 찾은 남자 얘기도 있는데, 이 얘기를 보자마자 나는 옛날 어렸을 때 회충을 입 밖으로 토해냈던 아이 생각이 났다.

여덟 살 때 얘기다. 어린 눈에 그것은 참 기이한 광경이었다. 회충은 다 자라면 30센티미터쯤 된다는데, 나는 그때 꽤나 큰 회충을 만났던 것 같다. 회충이 몸 안에 들어와 살면 복부 팽만도 일으키고 구토도 일으킬 수 있다 하니 그 기생충은 확실히 회충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회충은 소화기관 없이 체표를 통해서 사람으로부터 자양분을 흡수해 들인다나?

영화 ‘기생충’으로 돌아가, 이 영화의 기생충은 택시 운전하는 기택의 식구들이냐? 하고 묻는다면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 영화는 한 바퀴를 돌아, 지하실에 숨어 사는 전 가정부 충숙과 그의 남편 근세도 물론 기생충적이지만, 뭣보다 동익의 식구들 같은 사람들도 사실은 기생충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설거지를 맡기고 정원 관리도 맡기고 운전도 맡기고 자식들 교육도 다 맡기고 사는 이 맡김의 사람들이야말로 가난한 사람들의 노동에 기생하는, 이를 위한 재화도 사실은 알고 보면 그들이 부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말 그래도 기생충일 수 있다. 잔뜩들 빨아먹고 산다는 것이다.

어지간히 끔찍한 영화라고나 할까. 아무튼 칸 영화제 힘이 크기는 큰가 보다. BTS가 빌보드 차트를 ‘점령’했을 때 환호한 것처럼 이번에는 ‘기생충’황금종려상이 무서울 정도로 스크린을 점령했다. 한국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자기의 존재 증명에 목이 마르다.

더이상 미루면 안 될 듯한 압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어, 급한 대로 작은 영화관 찾아 아무데나 앉아 보기는 봤는데, 며칠 지나 보니 20일자로 누적 관객수 864만 명, 천만 돌파가 멀지 않았다. 나쁘지 않은 일이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