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병철의 경북 바닷길 537km, 그 맛과 멋
① 프롤로그 : 다시 ‘동해의 푸른 길’에 오르다

‘왕실의 나무’로 불리는 울진 금강송이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사파이어 색채로 빛나는 동해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해방감과 시원스러움을 선물하는 ‘경북의 보물’이다. 짙푸른 바다를 따라 들어선 수백 개의 크고 작은 마을마다 귀하고 신비로운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 동해의 푸른 길 537km를 스토리텔링화 한다면 ‘최고의 관광자원’이 될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 하다.

경북 동해안은 많은 매력을 지니고 있지만, 남해와 서해만큼 관광객이 찾아오지 않는다. 경북도로선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바다와 그곳을 삶의 터전 삼아 살아온 사람들, 동해만의 독특한 문화와 맛깔스런 음식, 해양스포츠 등 다양한 즐길거리와 역사 유적을 찾아내 소개하는 일은 경북이 ‘관광 1번지’로 도약하는데 작지 않은 도움을 줄 것임이 분명하다.

젊은 시인 이병철이 바로 이 역할을 맡아 ‘경북의 푸른 바닷길’ 1천300리를 독자들과 함께 걷고자 한다. 2020년은 ‘대구·경북 관광의 해’다. 동해의 진면목을 발견하고 소개할 본지의 기획 연재기사가 ‘대구·경북 관광 활성화’에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편집자 주
 

동해와 그곳에서 삶을 이어온 사람들
그들의 문화·의미 알아가는 역사 탐방
경주서 울진까지 7번국도 ‘허리’ 관찰
신라의 천년과 젊음이 맞닿은 여정도
금강송 품은 불영사로 첫 걸음 내딛어

“혹은 내가 투구게처럼 갑갑하게 느껴지고 이 한 줌 하찮은 삶도 갑자기 자갈밭을 갈고 있는 보습처럼 못 견디게 더워져서, 마침내 삶의 화두가 뻗쳐올라와 물집투성이인 얼굴이 되었을 때 다시금 나는 떠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석굴암 본존불상 아미타불과 경주에서 강릉까지 가는 7번국도를 떠올리고 있었다.”

윤대녕의 소설 ‘신라의 푸른 길’을 스무 살에 읽었다. 첫 단락만 읽고도 벌써 몸을 떨며 전율한 스무 살 여름, 나는 경주에서 속초까지 가는 7번국도를 여행했다. 경주 감포 문무대왕릉과 감은사지에서 출발해 호미곶을 경유하는 동안 두 눈이 파랗게 짓물렀다. 울진 월송정과 망양정에 올라 송강 정철을 생각하고, 동해 추암 촛대바위와 양양 낙산 해변의 일출을 불덩어리처럼 삼켰다. 새벽까지 마신 술 냄새로 숨 쉴 때마다 대기를 오염시키며, 좀비처럼 설악산 대청봉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금 돌아보니 꽤나 조숙했던 여행이다. 아니다. 그저 또래들보다 조숙하게 보이고 싶던 지적 허영의 방랑이었다. 그때 고작 몇 줄 주워 읽은 문장, 마구잡이로 눈에 욱여넣은 풍경들, 주머니가 얇아 컵라면 따위로 때운 식사만으로 동해의 바닷길을 다 알았다고 생각했다. 다 안다고 생각하니 시시했다. 그래서 십여 년 동안 그 길에 다시 오르지 않았다. 동해보다는 남해로, 바다보다는 강으로, 영남보다는 호남으로, 국내보다는 국외로 나다니는 사이 나는 서른 중반이 되었다. 포항은 볼락 낚시한다고 자주 드나들었지만 경주와 영덕은 생김새마저 가물가물했다. 철 지난 영화처럼 색이 바란 ‘푸른 길’을 다시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로 복원시킨 건 한 편의 시였다.

시인은 “화랑세기에 의하면 내 출생지가 사막이라고 기재되었으나/ 앞뒤 문장은 사나운 모래폭풍에 유실되었다”(이경교, ‘모래의 시’)고 고백하면서 ‘화랑세기’ 필사본을 둘러싼 진위논란의 풍문을 주석에 붙였다. 거기서부터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화랑세기’와 관련된 문헌들을 닥치는 대로 읽고, 전래동화쯤으로 여기던 ‘삼국유사’를 다시 들여다봤다. 특히 소설가 김별아의 연재 ‘경주 월성을 걷는 시간’을 탐독한 것은 모처럼 정신을 달뜨게 한 황홀한 독서 체험이었다.

그렇게 며칠 밤 ‘신라’로 거슬러 간 내 마음은 결국 십여 년 동안 덮어두었던 ‘신라의 푸른 길’을 다시 펼치게 했다. 소설의 주인공인 ‘나’, 그리고 경주발 강릉행 버스에서 ‘나’와 우연히 동석한 ‘안인숙’은 서른네 살 동갑인데, 나이를 더 먹기 전에 나는 그들과 비슷한 감수성으로 ‘신라의 푸른 길’을 소설처럼 걷고 싶어졌다. 그러자 동해 바닷길이 내 내면에서 마치 “꽃다님보단도 아름다운 빛”(서정주, ‘화사’)을 지닌 한 마리 뱀이 되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당위는 충분했다. 경북매일신문이 마침 경북 바닷길 537km 기행문의 연재를 제안해온 것이다.

여행과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다시금 떠나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갈아입을 옷 몇 벌과 책 몇 권, 그리고 운명처럼 ‘수로부인’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헛된 기대감도 함께 가방에 넣었다. 부산, 통영, 거제, 남해가 얼마나 아름다운 수평선을 지녔는지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여수, 순천, 보성, 목포가 거느린 남도 음식의 황홀한 맛도 익숙하다. 나는 수도권에서 가까운 속초와 안면도에 가 일출과 일몰을 보고, 여름휴가는 제주도로 다니는 서울 사람이다. 나와 경북 바닷길 537km는 아직 손도 잡지 못한, ‘썸’ 타는 사이인 셈이다. 경북 바닷길의 ‘맛과 멋’을 탐색하는 여정은 연애와 흡사한 호기심과 설렘을 일으켰다. 그 푸른 손등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순간, 손끝에서부터 내 온몸을 투명하게 물들일 동해의 스킨십을 나는 거부하지 않으리라.

울진군이 자랑하는 아름다운 사찰 불영사.
울진군이 자랑하는 아름다운 사찰 불영사.

설렘은 늘 불안과 함께 온다. 잠이 불편했는지 어깨가 결렸다. 악몽을 꿨으니 그럴 만했다. 초등학교 1학년 운동회 전날 밤, 달리기 시합을 앞둔 여덟 살 소년의 꿈에 뱀이 출몰했다. 부엌 싱크대 수도꼭지에서 살모사 한 마리가 꾸물꾸물 기어 나왔다. 그 꿈을 꾸고는 1등으로 골인했다. 길몽이었지만, 지금도 생생한 그 꿈의 질감과 색감과 냄새는 분명 불길한 것이었다. 그날 이후 뱀은 내게 매혹이자 공포의 원형(原形)이 되었다.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면 꿈자리에 꼭 뱀이 기어 온다. 동해안 여행을 앞둔 밤, 거의 30년 전 그 매혹과 공포의 꿈을 다시 꿨다. 어떤 불안이 영혼을 잠식했을까. 아마도 ‘새로움’에 대한 강박이 수도꼭지에서 기어 나와 내 허벅다리부터 목덜미까지를 휘감은 것 같다. 수많은 이들이 동해 바닷길을 이야기해왔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모국어 활자로 인쇄되는 모든 매체가 7번국도 기행문을 한 번씩은 실었을 것이다. 이미 지나치게 많이 소비된 그 길을 무슨 재주로 새롭게 노래한단 말인가. 몹시 골똘해졌다.

석가탄신일을 하루 앞둔 5월 둘째 주 토요일, 아침 일찍 차에 짐을 실었다. “불현듯 행장을 꾸리고 나는 정말 투구게 같은 모습으로 어깆어깆 길에 오른 것”이다. 낚시 도구들도 빼놓지 않았다.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가는 이 시기라면 울진과 영덕, 포항에서 농어와 볼락, 성대, 광어 등을 루어낚시로 노려볼 만하다. 하지만 물고기보다는 풍경을, 이야기를, 사람을, 맛을 더 많이 낚아야 한다. 그걸 실패하면 그때 물고기나 낚으며 답답한 속을 달래볼 심산이었다.

서울을 빠져나와 경부고속도로에서 원주 방향 중부내륙고속도로에 진입해 충주, 문경, 봉화를 차례로 지나는 동안 기행문의 주제와 구성에 대해 고민했다. 6개월 동안 매주 한 편, 여름 초입에서 겨울의 문턱까지 나는 독자들에게 꽤 웃기고 꽤 진지하면서 또 레퍼토리가 다양한, 신뢰할 만한 이야기꾼이 되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동해와 그곳에서 삶을 이어온 사람들, 그들이 만들어낸 문화와 선조들이 남긴 의미 있는 역사를 제대로 알 때까지 거듭 ‘눈이 시린 경북의 푸른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본격적인 연재에 앞서 거듭 밝혀두건대 이번 기행은 부산 기장에서 강원 고성까지 이어지는 7번국도 전체 구간을 답사하는 것이 아니라, 경주에서 울진까지 경북 바닷길로 한정했다. 지역 언론의 역할에 부합하고자 함인 동시에 보다 섬세하고 미시적인 시각으로 7번국도의 ‘허리’를 관찰하고자 함이다. 그래서 첫 번째 여정에는 울진과 영덕을, 두 번째에는 포항을, 세 번째에는 경주, 네 번째에는 다시 포항, 다섯 번째에는 울릉도를, 여섯 번째에는 다시 경주를,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에는 단풍에 울긋불긋 물들거나 또는 첫눈이 소담스레 내린 경주에서 울진까지를 두루 걷기로 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계획일 뿐이다. 여행자는 즉흥과 이탈의 아름다움을 늘 사랑해야 한다.

울진으로 가는 길, 활짝 열어둔 차창으로 “아까시 아까시 희디흰 꽃 냄새가 홍수로 번지”(김선우, ‘범람’)고 있었다. 7번국도 전체가 아까시 내음을 짙게 뿜어내는 한 마리 짐승으로 몸을 뒤챘다. 그 냄새에 나도 짐승처럼 몸이 달아올랐다. 꽃향기 환하게 밝혀드는 축제가 정신을 나른하게 하는데, 양 옆으로 스쳐 지나는 풍경들이 생경했다. 빽빽한 녹음 아래 새로 지은 펜션과 카페, 모던한 폰트의 간판들, 젊은 남녀들은 최신 유행의 난해한 패션을 걸치고 불영사를 향해 걸었다. 나는 뱀이 허물을 벗듯 새로운 몸짓과 숨결로 생동하는 경북 바닷길을 보았다.

“언제까지 ‘신라의 푸른 길’에만 머물러 있을래?” 나는 스스로에게 묻고, 어떤 각성을 재촉하면서 차에서 내렸다. 내 걸음이 너무 늦게 당도했을까. 경북 바닷길 537km는 이미 망양정과 월송정, 영덕대게, 구룡포 과메기, 호미곶 상생의 손, 불국사와 석굴암, 첨성대 등과 함께 ‘힙스터’들의 발길을 잡아끄는 핫플레이스 카페와 럭셔리 풀빌라, 대게 피자와 과메기 파스타, 재즈 페스티벌이 공존하는 낯선 차원이 되어 있었다. 동해안을 따라 상하로 구불구불하게 굽은 국도가 어느새 낮게 누워 수평의 길이 되었다. 수평의 길 위에선 시간도 수평이 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일직선상에 나란히 병렬되어 시간 구분은 무의미하며,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모두 ‘영원’이라는 초월적 시간 안에 통일되는 것이다. 신라 천년 왕들의 무덤과 젊음의 거리 ‘황리단길’이 마주보고 있는 경주처럼 말이다.

이제 나는 그 영원의 길을 걷고자 한다. 금강송 군락이 내 머리에 초록 휘파람을 부는 불영사 계곡으로 첫 걸음을 내딛는다. 저쪽 영원에서 이쪽 영원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무설설무법법(無說說無法法)’의 화두를 내 귓가에 속삭인다. 경전이나 교리가 아니더라도 참선하고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정말일까? 걷다 보니 어느새 극락도 부처도 가깝게만 느껴진다. 오늘은 불영사에 가 부처의 그림자를 보고, 송강 정철이 ‘관동별곡’에서 “바다 밖은 하늘인데 하늘 밖은 무엇인가?”라고 노래한, ‘하늘의 끝’ 같은 바다를 보러 망양정에 올라야겠다. 저녁엔 울진대게를 안주삼아 소주를 마셔야지. 술 한 잔에 파도와 아까시 냄새와 금강송 군락에서 우는 밤새소리를 모두 담아서.

날이 밝으면 “대진 지나 명사 이십리의 풍경이 관광엽서처럼 펼쳐진 울진을 지나 양정, 봉평해수욕장을 지난 다음 죽변”에 가야겠다. 경주에서 동해로 가는 윤대녕의 소설과는 반대 방향으로, 봉평해수욕장과 양정, 울진, 고래불과 대진 명사 이십리를 지나 영덕으로 흘러들고자 한다. 그 전에 생대구탕부터 한 그릇 먹을 셈이다. 오늘밤 소주 네댓 병쯤 우습게 마실 테니까. 담백하고 맑은 국물에 겨우 속을 푼 내가 “신라의 길이면서 또한 땅과 바다가 만나는 영원의 길”을 하행하는 동안 수로부인은 경주에서 강릉으로 올라올 것이다. 그녀를 만나고 싶다. 그녀에게 꺾어 줄 꽃이 천지사방 잔뜩 피어 있다.     /시인 이병철

 

시인 이병철은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늘한 슬픔과 뜨거운 열망이 동시에 읽히는 작품들로 주목받는 젊은 시인. 시집 ‘오늘의 냄새’, 산문집 ‘낚;시-물속에서 건진 말들’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를 출간했으며 ‘조선일보’와 ‘경향신문’ 등에 여행기와 칼럼을 쓰고 있다.

    시인 이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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