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윤 현

가진 것 다 나눠주고 비운 뒤에야
그대 흥겨운 듯 소리를 낸다
따뜻한 봄날에는 가만히 있다가도
바람 부는 겨울이 오면 더 크게 소리 낸다
언덕이나 빈 들판에서는 소리를 더 잘 낸다
무표정, 무욕의 연주라도 되는걸까
내가 병 주둥이에 입을 대고 불 때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
휘파람같이 소리를 내준다
그때도 병은 속을 다 비우고 있었다
소리를 낼 때면 언제나 빈 몸이었다

빈병은 비워져 있으므로 채울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고 속이 비었기에 바람에 소리를 담고 내놓을 수 있다는 시인의 말은 사람을 생각하게 해준다. 나눔과 베풂의 미덕을 빈병을 활용해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빈 콜라병 속에는 빈 콜라가 가득 차 있다고 쓴 신동집 시인의‘빈 콜라병’이라는 시가 생각나는 아침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