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바초프의 교훈
고르바초프의 교훈
  • 등록일 2019.06.19 19:56
  • 게재일 2019.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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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

1985년 3월 10일 소련 공산당 서기장 체르넨코가 서거하고, 이튿날 고르바초프가 54세 나이로 서기장에 취임한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 가운데 1917년 10월 사회주의 혁명 이후 출생자는 고르바초프가 유일하다. 장로정치(長老政治)에 익숙한 소련은 젊고 역동적인 고르바초프에게 묵직한 과업을 부여한다. 위대한 미국의 재건을 내세운 레이건의 국방과 외교정책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고, 소련내부의 적폐를 청산하는 역사적인 과업.


케네디와 존슨, 닉슨을 거쳐 15년 넘게 2천억 달러를 쏟아 부은 베트남전쟁에서 참패한 미국은 1979년 호메이니가 이슬람 혁명으로 이란의 최고지도자가 되는 것을 수수방관해야 했다. 인권과 민주주의, 동서화합을 주도한 카터는 강력한 미국의 재생을 선언한 레이건에게 패배한다. 친기업과 부자감세, 작은 정부로 표현되는 신자유주의를 내세운 레이건은 천문학적인 국방예산 증액으로 사회주의 심장부 소련을 압박한다.

휘청거리는 제국을 물려받은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jka)와 글라스노스트(glasnost)로 국내문제에 천착한다. 사회주의 체제를 온존하면서 국가재건을 도모하겠다는 것이 페레스트로이카의 핵심이고, 각종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것이 글라스노스트다. 후자의 극명한 본보기가 1986년 4월 26일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사고다. 이전 권력자들 같았으면 감추기에 여념이 없었을 터이나, 고르바초프는 모든 것을 밝히도록 한다.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당면문제를 관료주의와 알코올중독, 두 가지로 압축한다. 자동차에 문제가 생겨 수리를 맡기면 동베를린에서는 3개월, 레닌그라드에서는 6개월, 모스크바에서는 1년이 걸리던 때. 끝없는 서류와 문건, 승인절차와 도장 따위로 일을 지연시키고 효율을 떨어뜨리는 관료주의. 복지부동과 상명하복으로 악명 높은 관료주의 척결과 국민의 30%를 넘어서는 알코올중독이 제국을 80대 동맥경화 노인으로 만들고 있었다.

산적한 현안에 고르바초프가 골머리를 썩일 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한다. 아제르바이잔 내부에 자리한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둘러싼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사이의 해묵은 민족문제가 터진 것이다. 1988년 일이다. 이것은 이슬람의 아제르바이잔과 기독교의 아르메니아 사이의 종교분쟁이기도 하며, 훗날 유고연방에서 벌어진 보스니아 내전을 앞선 사건이기도 하다. 고르바초프는 이 문제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생각한다.

사회주의 소련에서는 200여 종에 이르는 모든 민족과 종족이 동등한 지위를 가졌다. 소련을 구성하는 핵심세력은 대러시아, 백러시아, 우크라이나였지만, 헌법상 지위는 차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루지야 출신의 스탈린이 레닌의 뒤를 이을 수 있었다. 사회주의 원칙에 충실했던 고르바초프는 민족문제 발생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실각과 제국의 몰락을 재촉하는 아킬레스건으로 작동한다.

홍콩 시민들의 반중시위가 세계적으로 화제다. 중국 공산당 정부의 ‘송환법’에 저항하는 홍콩 시민들의 강력한 함성이 지구촌 곳곳을 달아오르게 한다. 중국이 원하면 홍콩인이나 홍콩을 방문하는 외국인까지도 중국송환을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송환법의 요체(要諦)다. 이 법안이 관철되면 홍콩의 반체제인사와 인권운동가들이 중국본토로 송환되는데 악용될 것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홍콩은 1984년 등소평과 대처의 ‘일국양제(一國兩制)’ 원칙에 따라 1997년 중국에게 이양된다. 홍콩 주권반환 이후 50년 동안 중국이 홍콩의 외교와 국방주권을 갖되 홍콩에 자치권을 부여하는 것이 일국양제의 고갱이다. 송환법은 그것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740만 인구의 홍콩을 14억 중국이 경시한다면 그것은 대만과 또 다른 일국양제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 나아가 그것은 중국전체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고르바초프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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