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선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반지하’ 냄새야, 이사 가야 없어져.” 영화 ‘기생충’에서 주목한 말이다.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계급을 상징하는 장치들로 넘친다. 그 중에 하나가 ‘냄새’다. ‘기생충’은 와이파이도 잘 안터지는 반지하에 살고 있는 기우네가 고액 과외를 시작으로 박사장네 저택에 미술치료사, 기사, 가사도우미로 합류하며 펼쳐지는 계층간의 대비를 보여준다. 영화에서 ‘냄새’는 불평등한 계층구조의 단면을 암시한다. ‘향기’가 아니라 ‘냄새’의 발신자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반지하 방에 잠깐 들어오는 한 줌 햇살에 양말을 말리는 생활에 배인 냄새다. 이러한 선을 넘는 ‘냄새’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선을 넘는 사람들, 내가 제일 싫어하는데.” IT회사 젊은 CEO 박 사장은 말한다. ‘대지 600평에 1층만 200평’인 대저택, 한눈에 정원이 보이는 통유리로 된 거실이 있는 곳에서 사는 박 사장에게 젖은 행주에서 나는 듯한 퀴퀴한 냄새는 불쾌하다.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과 구분지으며 이질적인 냄새에 대한 불편함을 얘기한다. 마크 냅은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에서 “냄새 효과는 본질적으로 의식적이 아닐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우리의 행동은 숨 쉬는 공간에서 떠다니는 냄새의 영향을 받을 수 있고, 주위의 냄새는 사람들의 행동양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줄리아 우드는 “권력이 있는 사람은 권력이 더 적거나 권력이 없는 사람보다 더 넓은 공간을 차지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여러 ‘공간’은 사회경제적 위치를 반영한다. 차를 여러 대 갖고 있는 상류층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필요가 거의 없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주로 서민들이다. 폐기물 처리장이나 유해한 시설은 대체로 저소득층 거주 지역에 배치된다. 권력과 영향력을 가진 상류층은 안전지대에, 가장 취약한 계층은 일상의 위험에 불균형적으로 노출된다. 국토교통부의 ‘2018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38만 가구가 반지하에 살고 있다. 전체 아동 10명 중 1명은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여 있다. ‘기생충’에서 대주택과 반지하, 숨겨진 지하공간이 대비되듯이 집은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문제는 살고 있는 집에 따라 ‘구분짓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크고 높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작고 낮은 임대’에 사는 아이들이 서로 어울려 놀지 않는다. 이질적인 주거환경이 인간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친구를 집에 초대해본 적이 없다’고 답한 일반가구 아동이 36.2%였던 것에 비해, 주거 빈곤 계층의 아이들은 66.9%나 되었다. 취약한 주거환경은 도스토예프스키가 ‘가난한 사람들’에서 말했던 것처럼 심리적 위축으로 이어진다. “가난한 사람은 주변을 항상 잔뜩 주눅이 든 눈으로 살피면서, 주위 사람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신경을 쓰게 된다.” 주거 빈곤의 고착화는 공동체 의식마저 약화시키고 있다.

냄새가 선을 넘어야 한다.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이 서로 만날 있는 공간을 말한다. “공동선을 추구하는 정치는 시민들의 삶에 기반이 되는 시설들의 재건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모두 아이를 보내고 싶은 공립학교, 상류층 통근자를 끌어들일 대중교통, 민주시민이 공유하는 장소로 모이게 하는 ‘시설’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누군가에게 ‘기생’하는 삶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생’의 사회를 만들려면, 무엇보다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져야 한다. 공원, 체육관, 복지관, 도서관, 박물관에서 서로의 냄새들이 어우러지고,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일상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