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섀도캐비닛(Shadow Cabinet)’
‘섀도캐비닛(Shadow Cabinet)’
  • 등록일 2019.06.16 19:26
  • 게재일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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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영국 ‘섀도캐비닛(Shadow Cabinet 그림자 내각)’ 제도의 시원은 지금으로부터 무려 143년 전인 18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섀도캐비닛’이라는 말은 1907년 영국보수당의 A.체임벌린이 최초로 사용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영국의 민주주의가 현대 민주주의의 표본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저력을 유지해가는 비결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섀도캐비닛’ 제도일 것이다. ‘섀도캐비닛’은 야당이 정권획득에 대비해 수상 이하 각 각료를 예정해 미리 정책을 연구하고 대안을 만들며 집권 준비를 하는 제도다.

양당제가 발달한 내각제 국가라는 특성을 살려 야당도 총리를 비롯한 내각을 미리 정해 정책을 다듬어간다는 차원에서 정권 교체에 따른 정치적 불안정성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평소에도 정당 운영 자체가 ‘섀도캐비닛’ 중심으로 움직이는 만큼 자연스럽게 정당은 ‘정책 정당’으로 발전하게 된다. 영국 정부는 야당의 ‘섀도캐비닛’이 정책 연구에 필요로 하는 정부 자료를 아낌없이 제공한다.

평화적 정권 교체의 전통이 이제야 비로소 성립해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작금 심각한 문제점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은 바뀐 정권의 정책적 불안정성이다. 보수-진보 구조의 청백전 방식의 적대적 정치문화가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황에서 잦은 정권 교체로 인한 치명적인 정책 불안정성이 위험수위에 도달하고 있는 형국이다. 시행착오 때문에 번번이 죽어나는 것은 국민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야심만만하게 펼쳐온 적폐청산 드라이브와 온갖 이념정책들은 형언키 어려운 부작용들을 양산하고 있다. 부작용, 반작용들은 거의 전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닥치라 하고 달려가는 정책의 방향도 그렇거니와 검증되지 않은 탁상공론들이 마치 무슨 비법이나 되는 양 마구 펼쳐지는 바람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너무 늘었다. 국민이 설익은 정책의 실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결과는 참담하기 짝이 없는 비극이다.

제1야당 자유한국당이 ‘정책 정당’으로의 변신을 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섀도캐비닛’ 제도를 원용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가 솔솔 나오고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우리의 고질적 야당 풍토를 개선하기 위해서도 일리가 있는 발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대선 전 ‘섀도캐비닛’ 아이디어를 내놓은 적이 있다.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우선 ‘매관매직’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부터 펼친다. 불투명한 과거 정치의 관행에 비추어 볼 때 개연성이 전혀 없는 우려는 아니다. 그러나 제도가 가져올 편익을 좀 더 깊이 생각한다면 반대할 이유란 희박하다. 그래서 우리의 민주주의가 더 선진화할 수만 있다면 제도적 도입을 정식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는 판단이다. 그래서 국민이 정당의 수권 능력을 미리 심층적으로 가늠해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 않을까 싶다. ‘섀도캐비닛’은 ‘무조건 반대’의 습성에 빠져 여론 선동에만 혈안이 된 우리 정치의 구태(舊態)를 개선해갈 여지가 분명하다. 걱정스러운 것은 제도적으로 도입을 하려고 하면 정부 자료의 야당 제공을 극도로 싫어하는, 승자독식 의식에 포로가 된 정부·여당의 몽니가 여지없이 작동할 것이라는 점이다. 야당 인사에게 자료를 제공했다간 곧바로 공무원이 치도곤을 당하는 세상이다.

당장 제도화가 어렵다 하더라도 자유한국당이 ‘섀도캐비닛’ 콘셉트를 십분 활용해 ‘대안 정당’으로서의 역량을 구축하는 것도 괜찮은 지혜다. 사탕발림, 궤변이 뒤범벅이 된 선동정치의 망령으로부터 무구한 민심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라도 ‘정책 정당화’ 작업은 시급한 과제다. 이 나라 국민들이 각종 연고에 집착하거나, 오만가지 포퓰리즘 선동정치의 마수로부터 벗어나 ‘정책’을 표심의 으뜸 척도로 작용하도록 만드는 일을 더는 미뤄서는 안 된다. 진정한 ‘발상의 혁명’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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