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를 직접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도시에서 태어나 살아온 저는 40대 중반까지 반딧불이를 제대로 본 적이 없습니다. 몇 년 전 미국 출장 길에 뉴욕 브루더호프 커뮤니티에 잠시 체류한 적이 있습니다. 저를 호스팅해 준 가족들과 어느 날 저녁 마을 인근을 함께 산책합니다. 5월 말로 기억합니다. 어스름 해가 질 무렵 들판 곳곳에서 갑자기 반딧불이가 하나씩 둘씩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산책로와 인근 들판, 숲을 가득 메우는 장관이 펼쳐졌지요. 이 공동체에 도착하기 전에 들렀던 맨해튼 마천루 불빛들과 차원이 다른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옵니다.

7세기 펴낸 중국 진서(晉書)에 반딧불이가 등장합니다. 동진 때 사람인 차윤(330~400)은 어릴 때부터 학문을 좋아했고 대단한 노력파였습니다. 집안이 가난한지라 밤에 등불을 켤 기름을 살 돈이 없었지요. 자윤은 낮에 흠뻑 빠져 읽던 책을 밤의 어두움에 막혀 더 이상 읽을 수 없는 상황이 속상했습니다. 돈 있는 집 자제들은 등불을 켜고 밤에도 마음껏 책을 읽습니다.

차윤은 밤에도 책을 읽을 궁리를 하다가 반딧불이의 아름다운 야간 비행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지요. 명주 주머니를 벌레 통처럼 만들어 반디를 수십 마리 잡아넣고 거기서 나오는 빛으로 책을 읽습니다.

반딧불이 축제로 유명한 무주에서는 1998년 재밌는 실험을 합니다. 형설지공 체험 현장 이벤트를 벌이고 무풍면 계곡에서 잡은 반딧불이 80마리를 1ℓ짜리 페트 병에 모았습니다. 이 불빛으로 1페이지 20자 정도가 들어가는 천자문 책을 너끈히 읽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페이지 당 한자(漢子) 200글자를 배열한 책도 훤히 읽을 수 있었지요.

이렇게 열심히 공부한 차윤은 이부상서에 오르고 나중에는 상서랑까지 승진해 유능한 관리로 성장합니다. 진서에는 차윤과 손강의 이야기를 묶어 형설지공(螢雪之功)이라는 유명한 사자성어를 만들어냅니다. 여름에는 반딧불이 흐린 불빛으로 밤에 책을 읽고 겨울에는 창밖으로 몸을 내밀어 눈에 비친 달빛으로 공부하는 선비들의 치열한 배움의 열정을 빗댄 말로 후대에 큰 영감을 줍니다.

열정은 절박함으로부터 나옵니다. 그 절박함을 채워주는 도구가 책이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이들은 밤의 어둠과 추위와 궁핍을 책으로 이겨냅니다. 한결같은 배움의 열정이 우리를 흔들어 깨웁니다. 반딧불이의 작은 불빛은 거대한 LED 조명의 화려한 벽 같은 세상 앞에 쪼그라들며 나약해지는 생각을 죽비로 내리치는 참된 스승입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