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이거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소녀가 있습니다. 꿈 많은 십대에 소녀는 삶을 뒤 흔드는 질문을 만납니다. “만약 인생이 한 권의 책이고 당신이 그 책의 작가라면 당신은 그 책에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은가요?”

황량하기 그지없는 사막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라는 책에 눈(snow)이 들어가는 설정을 꿈꿉니다.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보지 못한 삶이 싫었습니다. 자유를 찾아 전 세계를 여행하고 진기한 경험 가득한 스토리를 쓰고 싶어하지요.

스무 살이 된 에이미 퍼디는 꿈에 한 발짝 다가섭니다. 눈 많은 솔트레이크로 이사를 간 겁니다. 마사지 치료사가 되지요. 두 손과 마사지용 간이 침대만 있으면 어디서든 돈을 벌 수 있었고 스노 보드를 맘껏 탈 수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인생에서 주인이 된 기분을 느낍니다. 자신감으로 충만했고 자유로웠습니다.

감기 기운이 있어서 조금 일찍 퇴근한 어느 날 오후. 에이미는 혼수상태에 빠집니다.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산소 호흡기를 달고 생명 유지장치를 매단 채 중환자실에 누워있습니다. 의사들이 원인을 찾기 위해 숨가쁘게 움직입니다. 위급한 알람이 생명 유지장치의 모니터에 울려 댑니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생존 확률은 2%. 사투 끝에 원인을 찾아내는데 성공합니다. “박테리아성 뇌수막염.”

이제는 치료를 위한 전투를 시작합니다. 에이미는 싸움에서 승리했고 목숨을 지켜내지요. 두 달 반의 투쟁 결과는 참담합니다. 비장과 신장을 잃었고 한쪽 청력이 사라집니다. 무릎 아래를 절단합니다. 퇴원하는 날 휠체어에 앉아있는 그녀는 조각조각 이어 붙인 누더기 인형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 에이미는 사투를 벌일 때보다 더 큰 충격을 받습니다. 금속 덩어리 차디찬 종아리. 볼트로 죈 파이프 발목. 노란 고무 발. 두툼한 의족을 신고 일어서 본 에이미는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에 사로잡히지요. 고통스럽고 부자유했습니다.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생각합니다. “이 못생긴 의족을 신고 앞으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모험과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가득한 삶을 이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스노 보드와는 영원히 이별해야 하는 걸까?”

삶의 이유와 소망을 잃어버린 에이미는 무기력에 빠집니다. 침대만 파고 듭니다. 자고 먹고 또 자고. 고통을 잊기 위해 잠에 빠져듭니다. 의족을 침대 곁에 세워 둔 채로. 괴물같은 저 의족을 신고 세상을 마주할 용기가 생기지 않습니다. (내일 계속)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