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희 수필가
김순희 수필가

남편은 길치다. 포항 토박이면서 육거리에서 50년 넘게 자리를 지킨 한일냉면도 못 찾는다. 갈 때마다 헷갈려한다. 그 골목이 그 골목 같다며 내게 되묻는다. 그런 사람이 술에 만취한 상태로 집을 찾아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길치들이 한 번 갔던 길을 기억하는 방식이 따로 있단다. 골목을 가다가 고양이가 웅크리고 있는 게 보이면 모퉁이를 돌고 또 한참 가다가 쓰레기통이 보이면 좌회전한다, 이런 식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내비게이션을 보면 되지 하겠지만 길치들은 보고도 해독을 못 해 길을 잘 못 접어들기 일쑤다.

반면에 나는 길을 잘 찾는다. 아니 첨부터 잘 찾는 사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길치 남편 옆에서 나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 어지간한 길은 혼자서 잘도 다닌다. 새 차를 살 때에 꼭 필요한 사양에 내비게이션은 넣지 않자 세일즈맨도 의아해했다.

25년 전, 동네 어귀의 용다방에서 맞선을 봤다. 억지춘향처럼 엄마의 권유에 못 이겨 나간 자리에 남편이 있었다. 차 한 잔만 마시고 와야지 하며 갔다가 말이 잘 통해 저녁까지 먹고 말았다. 그것도 모자라 후식으로 칵테일을 마시며, 내 손에 낀 세 개의 링 반지가 무슨 의미냐고 물었다. 만나던 남자들이 헤어질 때 하나씩 해 준거라며 웃어주었다. 이 정도면 놀라 자빠졌겠지 했지만 며칠 뒤 애프터 신청이 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남편과 나는 한 가지 일을 두고도 다른 생각을 했었다. 선 보기 싫어 30분 늦게 나갔지만 여자는 원래 조금씩 늦게 오는 것이라 여겼단다.

두 번째 만남에 친구를 네 명이나 데리고 나가 바가지를 씌웠다. 정 떨어져 도망가라고 한 일인데 남편은 자신이 맘에 들어 친구까지 소개시켜 준다며 좋았단다. 신명나서 노래방까지 따라와 취한 친구들을 한 명 한 명 집까지 데려다 줬다.

다음 날 더 만날까말까 하는 내게 친구들은 사람 괜찮다며 더 만나라고 부추겼다. 그렇게 우린 부부가 되었다.

영화 ‘그린북’에 글에 대해 문외한이던 운전기사가 시인이 되는 방법이 나온다. 공연 여행을 하며 흑인 피아니스트가 이탈리아 출신 백인 운전자에게 편지를 불러줬다. 그러다 두 달쯤 되니 기사가 혼자 편지를 쓰는 걸 보고, 왜 불러 달라고 하지 않느냐고 하니, 감 잡았다고 했다. 감 잡은 첫 문장은 이랬다. “디어, 여보. 당신은 가끔 집 같아. 노란 불이 켜져 있고 행복한 가족들이 웃고 있는 그런 집말이야.”

피아니스트는 감 잡은 거 맞다며 웃었다. 두 달 만에 주먹 쓰는 건달이 시인이 되었다.

시인이 되는 방법과 행복한 결혼생활 하는 방법이 별반 다르지 않다. 부부가 닮아 가는 것은 서로 다른 공간에 살다가 같은 공간에 살면서 습관도 식성도 얼굴도 닮아 가는 것이다. 25년 동안 안 맞는 부분은 서로 맞춰가며 익숙해졌다. 살면서 느낀 거지만 모든 게 꼭 맞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달라서 더 편한 것도 있다. 둘 다 카레이서인 것보다 길치남편에 길눈 밝은 아내가 더 궁합이 맞다. 남편은 물김치가 풋내가 나는 걸 좋아해 맛있게 익기 시작하면 손을 대지 않는다. 신김치는 내 몫이다. 난 적당히 익어서 채소에 힘이 빠진 김치가 입에 달다. 치킨 한 마리를 시키면 나는 목과 날개를 고르고 남은 모든 부위는 남편 차지다. 술을 좋아해 늘 즐기는 남편에게 술 한 잔 못하는 나는 재미없는 술 상대이기 보다 술값이 덜 들어 좋단다. 음식 끝에 마음 상할 일은 없다.

은혼식에는 25년 동안의 무사한 결혼을 기념하며 은으로 된 물건을 주고받는다. 만사에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남편은 올 해가 25주년인 줄 모르고 있다. 좋은 남편으로 가는 길을 거의 다 와서 입구를 못 찾고 헤매는 것 같다. 받고 싶은 선물 목록을 주며 엎드려 절을 받을까 말까 며칠 고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