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금요일에 고숙상(姑叔喪)이 있어 기차로 서울을 다녀왔다. 비가 와서인지 세상은 온통 흐렸다. 사람들의 표정은 말 그대로 잿빛 하늘이었다. 마치 기차는 빠른 속도로 사람들을 우울의 섬으로 데리고 가는 것 같았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래서인지 눈을 뜨고 있으면, 우울(憂鬱)에 감염되어 더 큰 우울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아 눈을 감아버렸다.

그런데 그것이 실수였다. 눈을 감는 순간 모든 감각이 청각으로 집중되었다. 필자의 귀엔 비속어들밖에 들리지 않았다. 한번 들어온 비속어들은 귀에서 나갈 생각을 않았다. 여러 지역의 어조들이 혼합된 비속어들은 심한 말 멀미의 원인이 되었다. 좀처럼 멀미를 하지 않는 필자이지만, 더 이상 눈을 감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악몽에서 깨듯 눈을 번쩍 떴다.

필자는 눈을 뜸과 동시에 눈 뜬 것에 대해 후회하였다. 필자의 눈엔 초로(初老)의 한 신사가 당신 앞자리에서 비속어로 통화를 하고 있는 이십대 초의 젊은이에게 정중하게 통화 소리를 줄여줄 것을 부탁하는 모습과 세상에서 가장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알 수 없는 말과 함께 아버지 연배 되는 사람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젊은이의 모습이 동시에 들어왔다.

당황한 것은 부탁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당신의 짐을 챙겨나가 버렸다.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차가 종착역인 서울역에 도착할 때까지 그 자리는 주인을 만나지 못했다. 그 대신 젊은이의 비속어가 자리를 떠난 사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더 크게 객실 안을 점령하였다. 필자를 비롯하여 많은 승객들이 있었지만, 비속어를 멈출 수는 없었다. 공공질서를 지켜줄 것을 당부하는 안내방송이 나왔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승무원이 몇 번 다녀가고서야 젊은이의 염치(廉恥)없는 통화는 끝이 났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엔 필자 뒤편에서 코를 빨아들이는 소리와 함께 비속어가 날라 왔다. 누구와 대화하는 것도 아닌데 코를 흡입할 때마다 그 사람은 욕을 했다. 습관인지 불편함에 대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욕하는 주기는 점점 짧아졌다. 정말 대략난감이었다. 다른 승객들은 하나둘씩 이어폰을 꺼냈다. 그리고 기차 안 현실과 담을 쌓았다. 불행하게도 필자에겐 이어폰이 없었다. 필자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오면 “어쩔 수 없는 건 받아들이는 것이다.”라는 글귀를 주문처럼 외우는 버릇이 있다. 이번엔 주문이 통하지 않았다.

잠은 달아난 지 오래였다. 그리고 욕 멀미 때문에 펼쳐 놓은 책장은 넘어가기를 거부하였다. 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도착을 알리는 기내방송을 기다리는 것과 휴대전화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후자를 선택하였을 경우 더 강력한 후회를 하게 됨을 필자는 알고 있지만, 이미 손은 인터넷에 접속하고 있었다. 숨진 7개월 영아, 6일 동안 방치! 인천 도심 카페서 흉기 살인 사건! 김원봉 언급 후폭풍 갈 길 바쁜 정국에 이념 논쟁 불똥!

갑자기 사람들의 눈총이 필자에게로 쏠리는 것을 느꼈다. 무슨 일인지 몰라 주변을 살피다가 필자는 깜짝 놀랐다. 필자는 필자도 모르게 비속어를 쏟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비속어를 멈추려고 했지만, 조금 전 기사들 때문에, 특히 김원봉에 대한 기사는 오히려 더 심한 비속어를 생각나게 했다. 그리고 현충일에 시장에서 뵌 어느 아저씨의 말이 계속 떠올랐다. “한국 전쟁 때 우리 아버지 죽인 놈들은 왜 한 마디도 사과를 안 하는지 모르겠다.”

많은 단어들이 현 정부 들어 사라졌다. 그 중 대표적인 말이 염치(廉恥)라는 말이 아닐까 싶다. 남북 정치인들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관용구가 있다. “염치와 담 쌓은 사람(놈)” 자신들의 정치 잇속을 위한 말잔치는 이젠 그만 두고 제발 염치부터 좀 차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 기차는 욕을 권하는 사회에 필자를 내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