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세 영

긴 겨울방학도

속절 없이 끝나는구나

내일 모레가 개학날인데

해 놓은 숙제는 아무것도 없다

입춘(立春) 되어

학교에 모인 나무들은

화사한 꽃잎, 싱싱한 잎새

달콤한 꿀,

제각기 해 온 과제물들 펼쳐놓고

자랑이지만

등교를 하루 앞둔 나는 비로소

책상 앞에 앉아 본다

사랑의 일기장은 텅 비었다

베풂의 학습장은 낙서투성이

개학해서 선생님을 뵙게 되면

무어라고 할까

방학도 다 끝나가는 날

이것 저것 궁색한 변명을

찾아보는 노경(老境)

어느 오후

대학의 교단에서 정년을 맞이하면서 시인은 어린 학창시절의 개학날의 풍경을 떠올리고 있다. 이제 나이들어 인생이라는 학교를 염두에 두고 자신을 성찰하는 시인의 마음을 읽는다. 살아오면서 무얼하고 살았는지, 꼭 해야할 일들을 결행하지도 못하고 개학을 맞이한 학생처럼 한 생을 돌아보며 후회하며 안타까운 소회를 밝히는 시인의 겸허한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