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를 연구하던 영국 고고학자들은 3천년 전에 미라를 발굴합니다. 미라는 손에 꽃 한 송이를 들고 있었는데 밀폐된 상태에 있던 꽃에 공기가 닿는 순간 산산조각 나지요. 주위에 떨어진 몇 알의 꽃씨를 보관해 영국으로 건너옵니다. 3천년 묵은 씨앗이었을테지요. 실험 삼아 씨앗을 땅에 심어 보았습니다. 싹이 트고 건강하게 자라 꽃을 피웁니다. 당시 유럽에는 이런 수종이 없었기 때문에 꽃 재배에 관여했던 스웨덴의 식물학자 ‘다알’의 이름을 따 ‘다알리아’라는 예쁜 이름을 붙입니다.

감사, 우아함, 화려함의 꽃 말을 지닌 다알리아는 3천년의 오랜 기다림 끝에 꽃망울을 틔웁니다. 끝도 없는 기다림 끝에 피어난 화려하고 우아한, 감사의 꽃입니다. 생명이란 이렇게 끈질긴 것입니다. 1천년 묵은 연꽃 종자를 출토해 심었는데 건강하게 자란 일이 보고된 적도 있습니다. 헤롯의 궁전에서 발굴된 2천년 전의 야자수 씨앗도 싹을 틔워 열매를 맺은 사건으로 유명하지요. 흔한 가로수 플라타나스 씨앗은 땅에 떨어지면 곧장 발아하지 않습니다. 껍질이 얼마나 단단한지, 땅에서 몇 년을 걸쳐 짓밟히며 껍질이 손상되어야 비로소 발아합니다. 씨앗을 심고 싹 트기를 기다리는 일, 열매를 맺는 일은 허둥지둥 서두른다고 되지 않습니다.

농장의 법칙이라는 것이 존재하지요. 시험을 준비하고 치르는 일은 벼락치기가 가능할지 모릅니다. 현대 사회는 마감에 쫓겨 몇 날 며칠 밤을 지새며 무언가를 이뤄 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만 농장은 벼락치기가 통하지 않는 곳입니다. 기다림과 성실함을 요구합니다.

빨리 빨리! 대한민국을 지금까지 성장시킨 우리 민족의 위대한 DNA이자 온갖 사고를 야기하는 양 날의 검이지요. 우리는 느린 것을 참지 못합니다. 인터넷이 속도가 느린 것을 못 참는 특징이 있기에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속도를 자랑합니다. 급격한 산업화와 더불어 성과 위주의 물질문명이 고유한 멋을 사라지게 했습니다. 원래 우리는 선비 정신을 지닌 느긋하고 품격 있는 문화를 갖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뽈레 뽈레! 아프리카 말인데 빨리 빨리와 비슷한 발음이지만 뜻은 정반대입니다. ‘느긋하게 느긋하게!’

내면의 농장을 생각합니다. 잡초와 엉겅퀴를 제거하고 씨앗 뿌리고 몇 달 혹은 몇 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설령 3천년이 흐른다 해도 생명이 내 안에 존재하는 한 꽃은 기어코 피어나는 법이니까요. 그대 삶의 농장에 주렁 주렁 열매 가득한 미래가 보입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