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수백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과
서수백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과

2년 전부터 학생들과 단편소설 한 편을 필사하고, 낭독하고, 생각을 나누는 활동을 해 오고 있다. 사실 나는 소설을 잘 모른다. 정확히 말하면 소설을 이해할 수 있는 지적 감성이 매우 부족하다. 그래도 한때는 학내 문학 공모전에 당선도 해 보고 ‘문학소녀’라는 간지러운 말도 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감성은 잃어버리고 ‘팩트(fact)’와 ‘실용성(utility)’만을 중시해 온 듯하다. 학생들과 소설을 읽기로 한 것은 처음에는 권유에 따른 것이었고 이후엔 자연스러운 내 의지였다. 솔직히 사실과 실용을 중시하기 때문이라는 건 핑계일 뿐이고 소설을 읽지 않은 건 순전히 독서에 대한 내 게으름 탓이다. 어떤 장르를 읽든 독서를 통한 배움은 참 크다는 생각을 다시금 한다. 올 5월에 네 번째 소설로 김숨 작가의 ‘뿌리 이야기’를 읽고 있다. ‘이상문학상’ 대상이라는 거창한 타이틀 때문에 이 소설을 읽기로 한 것은 아니다. 소설 ‘뿌리이야기’를 통해 우리 시대 ‘뿌리 뽑힘’에 대한 연민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과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것을 나누는 것에 대한 가치는 더욱 확신이 들었다.

작가는 길가에 심겨진 나무가 먼 타국에서 옮겨져 온 것이라는 말에서 이 소설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작가는 나무가 느꼈을 뿌리 뽑힘에 대한 공포를 생각했다고 한다. 다소 비약적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으나 작가는 노인들이 살던 집에서 죽음을 맞지 못하고 요양원이나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 것이 뿌리가 뽑힌 불행한 모습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작가와 그의 작품에서 사람에게 ‘뿌리’가 무엇이고 ‘뿌리를 내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분명하다. 내가 인상 깊게 읽은 ‘뿌리이야기’의 한 부분을 소개한다.

“포도나무 뿌리는 천근성이야. 태생적으로 뿌리를 깊게 내리는 나무가 아니지. 뿌리 뻗음이 얕아서 땅 표현 가까이 뿌리를 내리지. 포도나무 뿌리가 그악스러워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지. 깊게 뿌리를 내리지 못하니까 거머리처럼 땅 표면에 달라붙어서 옆으로 옆으로 산란하게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거야 (중략) 호두나무 같은 심근성 나무는 뿌리를 깊이, 단순하게 내리지. 당신을 처음 봤을 때 심근성 나무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어.”

“어떤 포도농장들은 포도나무들 사이사이에 민들레나 토끼풀 같은 잡풀을 심기도 한다는 걸 그는 모르는 듯했다. 포도나무가 물을 얻으려 잡풀과 경쟁하느라 뿌리를 땅 속 깊이 내리는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그렇게 한다는 것을. 천근성인 포도나무 뿌리가 태생적인 기질을 거스르고 땅속 깊이 내리면 생산량은 줄어들지만 품질이 좋아지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것을. 수평을 지향하는 천근성 식물과 수직을 지향하는 심근성 식물을 밀식하면 뿌리의 모양과 성장 특성이 달라 공존이 가능하다는 것을. 심근성 식물만 심었을 때는 경쟁하듯 키 재기를 하면서 서로를 도태시킨다는 것을. 천근성 식물만 심었을 때는 영역을 더 차지하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말려 죽인다는 것을.”

소설 속 남녀주인공들이 하는 이 말에서 우리 시대의 모습이 떠오른다. 뿌리를 내리려는 사람, 뿌리를 내리지 않으려는 사람, 뿌리를 뽑는 사람과 뿌리 뽑힘을 당하는 사람이 섞여 사는 우리네 삶의 모습이…. 그리고 얼마 전 난민 인정을 받기 위해 인천공항에서 4개월 이상을 노숙하고 있다는 앙골라인 루렌도 가족 생각도 났다. 그러나 나 역시 분명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답답함을 느낄 뿐이다. ‘뿌리이야기’에서 천근성(淺根性)을 심근성(深根性)으로 변화시키는 전략으로 양질의 포도를 수확하는 포도농장 사람들의 지혜가 필요하다. 천근성의 나무와 심근성의 나무가 함께 공생할 수 있는 책임감과 연대감을 새삼스레 되새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