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금 30만원 선고 원심 깨

‘건물주로부터 갑질을 당했다’는 내용의 전단을 돌린 임차인에 대해 대법원이 모욕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최근 모욕 혐의로 기소된 박모(57)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3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지법에 돌려보냈다고 9일 밝혔다. 박씨는 대법원의 선고 취지에 따라 대구지법에서 무죄가 확정될 전망이다.

대구 중구의 한 건물 1층을 빌려 월세를 내며 미용실을 운영한 박씨는 지난 2016년 바뀐 건물주와 화장실 사용 문제 등을 놓고 갈등을 빚었다.

화가 난 박씨는 이듬해 8월 ‘건물주 갑질에 화난 미용실 원장’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미용실 홍보 전단지 500장을 제작해 그중 100여장을 인근에 사는 주민들에게 돌렸다. 또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전단지 15장을 2017년 11월부터 3개월 동안 미용실 정문에 붙여놓기도 했다.

이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씨에게 1심은 무죄를, 항소심 재판부는 유죄로 벌금 30만원을 선고하며 다른 판단을 했다.

재판에서는 ‘갑질’이라는 표현이 건물주의 명예를 떨어트릴 만한 것인지가 판단의 쟁점이 됐다.

1심 재판부는 ‘갑질’ 표현을 모욕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항소심 재판부는 이 표현이 사회적 평가를 떨어트릴 만한 추상적 판단이라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박씨와 건물주가 겪은 갈등 등 맥락을 고려하면 모욕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형법상 모욕죄는 사람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의미하는 외부적 명예를 보호법익으로 하는 범죄”이라며 “모욕은 사실을 적시하지 않고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할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전제했다.

또 “상대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할 만한 게 아니라면 설령 표현이 다소 무례하더라도 이를 두고 모욕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원심은 박씨가 모욕죄를 저질렀다고 단정하고 말았고 형법상 모욕 의미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으니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판결했다.

/김영태기자 piuskk@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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