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결론부터 먼저 말하고 시작하자. 김원봉(金元鳳)은 독립운동가인가? 그렇다. 그는 애국지사인가? 그렇다. 김원봉은 국가유공자인가? 아니다. 그는 대한민국을 반대한 사람이다. 김원봉은 6·25 전쟁의 전범인가? 그렇다. 그는 민족상잔의 비극을 일으킨 북한 정권의 핵심이었다. 김원봉은 서훈의 대상이 될 수 있나? 아니다. 그에게 훈장을 주면 그와 그의 가족들이 보훈 대상이 되는데, 나랏돈이 그렇게 투입되는 것은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를 통해서 느닷없이 소환한 인물 하나가 정국의 핵폭탄으로 등장했다. 문 대통령은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 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면서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 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됐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발언을 듣는 순간 걱정스러운 마음이 든 사람들은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간단없이 발생하는 정치권의 막말 파동을 둘러싸고 가뜩이나 헝클어져 버린 정국 속에서 대통령의 도발적 발언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 더 문제다. 3·1절 기념사에서의 ‘빨갱이’, 5·18 기념사에서의 ‘독재자의 후예’ 발언의 여진이 채 가시지 않은 마당이다. 도대체 이 나라 대통령이 진심으로 바라는 바는 무엇인가.

문 대통령이 ‘약산 김원봉’을 치켜세운 일은 그게 언제 어떤 자리였느냐부터 따져봐야 한다. 예순네 돌을 맞은 현충일이었고, 하필이면 6·25 전쟁으로 희생된 호국영령들이 묻혀있는 국립서울현충원이었다. 굳이 그 자리에서 김일성으로부터 훈장까지 받은 북한 권력 핵심의 이름을 불러 찬양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인식의 오작동이다.

배려심이 부족한 청와대의 행태는 그 며칠 전에도 있었다. 청와대는 현충일을 앞둔 지난 4일 천안함 폭침·연평해전 유가족을 비롯한 보훈가족들을 초청한 오찬 자리에서 북한 김정은과 문 대통령이 손을 맞잡은 사진이 담긴 안내서를 배포해 참석자들의 반발과 정치권의 비판을 샀다. 5·18 피해자들 앞에 전두환 대통령 부부와 문 대통령 부부가 손을 맞잡은 사진을 배포한 격이라는 비아냥이 조금도 지나치지 않을 패착이다.

예상대로 심각한 후폭풍과 국민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야당 인사들이 줄줄이 맹비난을 퍼붓고 나섰다. 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인 2015년에 했던 “약산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최고급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 드리고 술 한 잔을 바치고 싶다”고 했던 발언이 되살아나고 있다. 차명진 전 의원이 “문재인은 빨갱이”라는 막말까지 쏟아내어 세상이 또 시끄럽다. 조선의열단 창단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사업을 추진 중인 국내 7개 독립운동 관련 단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섰다. 이들은 오는 8월부터 11월까지 광주·대구·대전·부산을 순회하며 ‘약산 김원봉 서훈 대국민 서명운동’을 전개한다고 밝혔다. 이래저래 민심은 더욱 갈기갈기 찢어지게 생겼다. 해방 전 조선의열단의 활약이 제대로 평가되는 것은 맞지만, 아무리 그 말로가 짠하다 해도 6·25 전범까지 미화(美化)하는 것은 결코 바른길이 아니다.

친일 행적이 드러난 국가유공자를 유공자 호적에서 뺀다는 얘기도 있다. 손혜원 의원은 부친이 공산주의자였지만 전향해 경찰의 대공 수사에 협조했기 때문에 서훈 결정에 하자가 없다고 주장한다.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중에 석연치 않은 인사가 적지 않다는 논란도 있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정의롭고 온당한 것인가. 그러잖아도 복잡하고 어지러운 정치판에, 노림수를 알 길 없는 문 대통령의 ‘김원봉’ 핵실험 연기가 자욱하다.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는 지금 온전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