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의 낚시 수상 <상>

북극해가 파도치는 트롬쇠 텔레그라프북타 해변에 텐트를 치고 오로라를 기다렸다.
북극해가 파도치는 트롬쇠 텔레그라프북타 해변에 텐트를 치고 오로라를 기다렸다.

취미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섬세한 감각과 세련된 언어로 사물과 인간의 내면을 포착해온 시인 이병철(35)은 한국 문단에서 유명한 ‘젊은 낚시꾼’이기도 하다. 이병철 시인이 멀고 먼 노르웨이와 포르투갈에서 겪은 독특한 ‘낚시 체험’을 2회로 나눠 싣는다.

 

흰눈 덮인 해변에 텐트, 모닥불에 양갈비
어둠마다 얼음 박힌 날카로운 바람도
세상 잊을 수 없는 추억의 하룻밤으로
노르웨이에서 황홀한 캠핑·낚시 ‘만끽’

노르웨이 플럼의 작은 마을. 피오르드와 목조건물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노르웨이 플럼의 작은 마을. 피오르드와 목조건물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낯선 이국의 강과 바다에서 생전 처음 보는 커다란 물고기를 잡는 꿈! 낚시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그려볼 것이다. 꼭 낚시꾼이 아니더라도 허먼 멜빌의 ‘백경’이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감명 깊게 읽은 독자라면 망망대해에서 낚시하는 상상을 해봤을 테고, 로버트 레드포드가 연출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을 본 사람들은 브래드 피트가 크고 아름다운 무지개송어를 잡는 장면에서 쾌감을 느꼈으리라.

해외 원정 낚시는 책과 영화에서만 접하던 상상과 동경의 영역이지만, 이제는 그 미지의 안개가 꽤 걷혔다. 낚시 채널뿐만 아니라 공중파 티브이 프로그램에서도 연예인들이 알래스카, 뉴질랜드, 팔라우, 오키나와 등을 누비며 낚시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전문 낚시인들 중에는 오대양 육대주 곳곳을 탐험하며 대어와 괴어만을 골라 낚아내는 ‘헌터’들도 있다. 하지만 많은 시간과 비용, 전문성과 정보를 필요로 한다. 현지 가이드의 도움 없이는 시도하기 어렵고, 대상어종 공략에 적합한 장비를 구비하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다. 단순 취미로 낚시를 즐기는 애호가나 배낭여행객이 인도 히말라야 협곡의 골든마시르라든가 호주 오지 계곡의 머레이코드, 러시아 아무르강 전설의 물고기인 타이멘이나 아마존에 사는 세계 최대의 담수어 피라루크, 남태평양의 자이언트 트레바리 또는 옐로우핀 튜나를 잡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해외 원정 낚시가 이룰 수 없는 꿈인 것은 결코 아니다. 물이 있는 곳에는 당연히 물고기가 살고, 그 물고기를 낚는 방법은 보편적인 낚시의 기술을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호수가 설산을 거울처럼 되비추고 있다. 어느 것이 산이고 어느 것이 물인지 분간할 수 없다.
호수가 설산을 거울처럼 되비추고 있다. 어느 것이 산이고 어느 것이 물인지 분간할 수 없다.

꼭 전문 낚시 여행이 아니더라도 약간의 의지와 부지런함만 있으면 외국 여행지에서 낚시를 즐기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나의 체험을 바탕으로 외국 여행에서 물고기를 잡는 법을 슬쩍 귀띔해보려 한다. 물론 동남아 선상 체험 낚시 같은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누구나 수월하게 이국의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겠지만, 보다 이색적인 풍경은 유럽에 있다. 먼저 북극해가 파도치는 북유럽, 노르웨이로 가 보자.

노르웨이 제2의 도시이자 미항(美港)인 베르겐까지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으나 오슬로에서 기차와 산악열차, 페리, 버스를 차례로 옮겨 타는 ‘노르웨이 인 어 넛셀(Norway in a Nutshell)’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피오르드(fjord)를 지나올 수 있다. 빙하가 지반을 침식시켜 생긴 골짜기에 바닷물이 들어찬 에메랄드빛 협곡, 설산이 커튼처럼 겹친 피오르드를 통과하면서 나는 이 세계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내 종교는 자연이다. 자연이 내 안에 경이와 신비, 감사함을 불러 일으킨다”던 올리버 색스 교수의 말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한 것이다.

베르겐에 오기 전, 노르웨이 최북단 도시인 트롬쇠에서 폭설에 덮인 해변에 텐트를 치고 양갈비를 구워 먹으며 느낀 것과는 또 다른 황홀감을 피오르드에서 만끽했다.

여행을 앞두고 배낭을 꾸릴 때, 노르웨이에서 캠핑과 낚시를 꼭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천혜의 자연 환경을 지닌 아웃도어 레저의 천국이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정부는 여행자에게 ‘자연에의 접근권’을 허락한다.

 

노르웨이 바다에서 낚시로 잡은 70㎝급 금빛 대구.
노르웨이 바다에서 낚시로 잡은 70㎝급 금빛 대구.

자연에의 접근권이란 노르웨이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산과 바다, 강, 호수, 공터 어디서든 야영과 취사, 트래킹을 허용하는 법적 보장을 뜻한다. 덕분에 트롬쇠 해변에 텐트를 치고 모닥불 피워 양고기를 구워 먹었다. 그때 온통 흰 눈에 덮여 딴 세상 같은 해변으로 북극해의 파도가 엄숙한 성가처럼 밀려왔다. 어둠마다 얼음이 박혀 바람은 날카롭고, 유리 두드리는 맑은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 하룻밤은 이 세상에서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다만 낚시의 경우 강이나 계곡, 또 바다와 담수가 만나는 기수역인 피오르드에서는 라이센스를 취득해야 한다. 현장에서 일일 면허를 구입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귀찮은 일이다.

반면 바다낚시는 라이센스 없이도 즐길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베르겐 해안에서 루어 낚시(인조 미끼를 사용하는 낚시)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생선으로 사람들은 흔히 연어를 떠올리지만, 정작 바이킹의 후손들이 가장 사랑하는 물고기는 대구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대구를 스테이크나 스튜로 즐기고, 염장하거나 말려서도 먹는다. 어딜 가나 대구 요리가 있고, 대구 상징물을 볼 수 있다. 베르겐의 구시가지에는 나무로 된 커다란 대구 조형물이 있는데, 관광 명소로 사랑받는다.

노르웨이에 사는 한 한국인이 인터넷에 “갯바위에서 낚시로 대구를 잡았다”고 올린 글이 나를 부추겼다. 그러나 그 한 문장이 유일한 정보였다. 어떤 장비와 미끼를 사용했는지, 낚시 방법은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우리나라 동해에서 겨울철에 주로 이뤄지는 대구 낚시의 경우 배를 타고 나가 수심 100미터권까지 메탈지그(인조 미끼의 일종)를 내리는 방식인데, 나는 대구는 언감생심이고 갯바위 주변의 작은 잡고기들이나 낚을 요량으로 섬진강에서 쓰던 6.6피트짜리 쏘가리 낚싯대와 2000번 소형 스피닝 릴, 그리고 지그헤드와 웜 루어만을 간단히 챙겼다. 차를 몰아 베르겐에서 50km 정도 떨어진 뤼그라(Lygra)로 향했다. 포인트 정보는 물론이고 대구 외에 또 어떤 어종이 사는지, 주된 낚시 방법과 채비가 무엇인지 전혀 모른 채, 뤼그라의 륑하이센터(Lyngheisentret) 앞 바다가 조류의 흐름이 원활해 낚시가 잘 되는 곳이라는 첩보만을 어렵게 입수했을 뿐이다.

 

게스트하우스 공용주방을 독차지한 채 대구 요리를 하는 중이다.
게스트하우스 공용주방을 독차지한 채 대구 요리를 하는 중이다.

산비탈을 한참 걸어 내려가 해변에 도착했다. 아름다운 바다가 기다리고 있었다. 갯바위 몇 곳을 지나 낚시할 만한 장소를 정했다. 수심도 꽤 있어 보이고, 곶부리와 홈통이 이어지는 구간이었다. 무엇보다 발판이 편했다. 자리를 잡고 채비를 꺼냈다. 합사 0.8호 낚싯줄에 16파운드 쇼크리더, 4분의1온스 지그헤드와 4인치 그럽 웜. 첫 캐스팅과 함께 노르웨이에서의 낚시가 시작됐다.

네댓 시간가량 부지런히 던지고 감기를 반복했다. 바닥을 긁어보기도 하고, 중층, 상층, 표층을 교대로 노려보기도 하고, 단순 리트리브부터 강한 저킹과 트위칭까지 액션을 다양하게 줘보기도 했다. 그러나 입질은 전혀 없었다. ‘그럼 그렇지. 맨땅에 헤딩하는 꼴이지. 아무리 자연이 잘 보존된 곳이라고 해도 나 같은 얼치기에게 잡혀줄 덜떨어진 물고기는 없을 거야’ 체념하면서 나는 점점 지쳐갔다.

‘에이, 한 번만 더 던져보고 집어 치우자’ 하고는 홈통 지형 깊은 물골 자리에 채비를 던진 후 바닥을 천천히 긁었다. 입질 없어 부아 치민 속까지 꽉 막히게 하는 답답한 묵직함이 또 느껴졌다. ‘이번에도 바닥에 걸린 모양이군’ 생각하자 이가 갈리는데, 손에 쥔 낚싯대 그립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곧 꾹꾹, 아래로 처박는 움직임이 내 손에 전해졌다.

“왔구나, 왔어!” 낯선 이국 바다에 뭐가 사는지도 모르는 나는 어떤 녀석을 만나게 될지 무척 궁금하고 설렜다. 한국에서 짊어 메고 온 쏘가리 낚싯대로 노르웨이 물고기를 걸었다는 사실에 벌써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한참을 저항하며 힘을 쓰던 녀석이 마침내 수면에서 금빛으로 빛나는 순간, 나도 모르게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황금빛 대구였다. 70센티미터짜리 대물!

그 순간이야말로 내겐 생의 환희이자 삶의 정수였다. 갯바위 위에서 덩실덩실 춤을 췄다. 한 마리 잡은 기쁨에 취해 곧장 낚시를 접었다. 한 마리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흥분해선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먼 바다가 아닌 연안 갯바위에서 캐스팅 낚시로 대구를 낚았다. 그것도 쏘가리 전용 로드와 2000번 릴, 지그헤드와 웜을 사용해서 말이다. ‘노르웨이 빅 피쉬’를 들고 다시 산비탈을 걸어올라 차 세워둔 곳에 도착하니 뤼그라의 석양이 금빛 대구처럼 내 쪽으로 헤엄쳐 오고 있었다. 운전해서 베르겐으로 가는 차 안은 그야말로 광란의 1인 축제장, 노래를 흥얼거리며 몸을 흔들어댔다. 신호에 멈춰 설 때마다 허공에 어퍼컷 세리머니를 날렸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 거대한 대구를 공용주방으로 들고 가자 러시아, 영국, 중국, 스웨덴 친구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조금 전 낚시로 직접 잡은 것이라고 설명하니 박수를 치고 엄지를 세웠다.

세계 각국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뒤로 하고 싱크대를 독차지한 채 대구를 손질했다. 석장 뜨기 한 대구살을 맥주와 통후추, 소금으로 밑간한 다음 올리브유 두른 팬에 구웠다. 레몬이 없어 오렌지즙을 뿌렸다. 대가리와 뼈, 내장은 마늘, 양파, 당근과 푹 끓여 스튜를 만들었다.

자연산 대구 요리를 나눠 먹을 영광의 주인공으로 룸메이트인 마이크가 선택됐다. 모친은 러시안, 부친은 이탈리안이며, 이탈리아의 재패니즈 레스토랑에서 요리하는 친구다. 일식집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맛보인다는 게 부담됐지만, 다행히 그는 정말 맛있게 먹었다. 뼈에 붙은 살점까지 쪽쪽 빨아대며 알뜰하게 대구 한 마리를 해치웠다. 여행 온 지 보름 만에 처음 제대로 된, 근사한 저녁을 먹었다며 고마워했다. 설거지는 자기가 하겠다고 팔을 걷었다. ‘대박’, ‘감사합니다’ 같은 한국말을 가르쳐줬더니 곧잘 했다.

이병철 시인
이병철 시인

비록 한 마리지만 생애 가장 풍성한 조과였다. 나눠 먹는 기쁨도 누렸다. 밤늦도록 금빛 대구의 손맛이 살과 뼈와 피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룸메이트들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 속으로 환호하며 간신히 눈을 붙였다. 그날 밤에는 꿈도 꾸지 않았다. 이미 꿈을 다 살아버렸기 때문에.

노르웨이는 몇 년 사이 한국인들의 인기 여행지로 급부상했다. 깨끗한 대자연 속에서 피오르드 투어와 트래킹 등 레저 활동은 물론 ‘슬로우 라이프’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인천에서 오슬로까지는 보통 터키 이스탄불이나 독일 프랑크푸르트 등을 경유해서 가는데, 대한항공이 6월 14일부터 8월 9일까지 매주 금요일 오슬로 직항 노선을 연다고 한다.

올 여름 노르웨이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간단한 루어낚시 채비를 챙겨 떠나보자. 내가 사용한 낚시 장비는 다 합쳐봐야 20만원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낚싯대로 만끽하는 황금빛 대구와 고등어, 연어의 짜릿한 손맛은 값을 매길 수 없는 최고의 ‘액티비티(activity)’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