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에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한다. 프리 솔로 선수라고 해야 하나? 알렉스 호놀드는 드디어 요세미티 공원 암벽한 엘 캐피탄에 도전하기로 한다. 914미터 높이, 해발로 치면 2300미터의 화강암 암벽 덩어리 엘 캐피탄. 여기 어떤 등산 장비도 없이 오로지 맨손과 맨팔로, 등산화만 신은 채 오르고자 하는 것이다.

어째서 이렇게 프리 솔로라는 말이 붙었는지 모르지만 어감부터 이런 류의 등반에 딱 어울리는 어휘라는 생각이 든다. 옛날에 어느 등반가가 등반 속에서, 산 속에서 얻는 고독을 흰 고독이라 하여 세속의 외로움 검은 고독에 대비시켰다 한다. 등반은 확실히 인생을 알게 하는, 인생에 너무나 잘 비견될 수 있는 단 하나의 종목인 것 같다.

멀리서 보는 엘 캐피탄은 자연의 장관이다. 깍아지른 듯한 한 덩어리의 암벽. 이 바윗덩어리는 뭇사람들의 쉬운 접근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어째서 알렉스는 프리 솔로라는 위험한 도전에 빠져든 것일까?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실물의 알렉스는 말수 적고 자기 표현에 어려움을 겪는 듯한 내성적인 사내다. 사랑하는 사람도 있건만 그는 단 한 순간의 실수나 잘못으로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해 버릴 수 있는 맨 손 오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어느 새벽 그는 암벽을 오르려다 도중에 그만두기도 한다. 뭔가 살벌한 예감에 사로잡혔기 때문일까. 안전 로프를 매단 채 연습할 때는 가능하던 팔바꿈, 다리 바꿈이 로프 없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그는 깊은 좌절을 경험한다. 언제 어떻게 새로 도전할 수 있게 될지 모르는 마음 고름의 시간이 계속된다.

이 다큐멘터리를 미래를 알지 못한 채 찍은 드라마다. 이 활사실적 영화를 찍은 감독이며 카메라맨들도 날이 가까울수록 긴장에 사로잡혀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들은 카메라를 들이대야 하지만 자칫 이는 알렉스의 도전에, 그의 날카로운 심리를 건드려 비극을 야기할 수도 있다.

산악 영화를 자주 본다. 산악의 재난 영화는 그것이 가상이며 대부분은 다들 살아날 거라는 것을 아는데도 사람을 긴장할 수밖에 없도록 한다. 그런데 이 ‘프리 솔로’는 실제에 토대한 영화가 아니라 끝이 결정되지 않은 진행형 다큐멘터리 영화다.

한 발 한 발, 아니다, 한 발가락 끝, 한 손가락 옮길 때마다, 저 아래로는 까마득한 낭떠러지. 0.1초의 순간에 알렉스는 이편 아닌 저편의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끝은 어땠나? 다행히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다. 엘 캐피탄 등반을 준비하는 동안에 알렉스는 어떤 유명한 프리 솔로 선수가 추락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까지 듣는다. 자신도 그렇게 세상을 하직할지 알 수 없었고, 아무런 안전장치도 준비되지 않았다.

알렉스가 보여주었듯이, 우리는 유머 없는 ‘프리 솔로’들일까? 나는 요즘 살아도 살아 있는 것 같지 않다. 삶과 죽음 사이의 ‘thin red line’위에 서 있는 것 같다. 삶이란 이렇게 위태로운가 한다. 나이를 많이 먹었다. 오늘은 통풍이 도져 등산용 스틱을 짚고 걷는다. 절뚝거리며. 알렉스처럼 무언가 위대한 기록조차 남길 수 없는 길을.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