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벚나무에서 생명의 숲을 찾다
왕벚나무에서 생명의 숲을 찾다
  • 윤희정기자
  • 등록일 2019.06.06 19:41
  • 게재일 2019.0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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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타케의 선물’
정홍규 지음·도서출판 다빈치 펴냄
인문·2만원

‘에밀 타케의 선물’(도서출판 다빈치)은 환경운동가이자 생태교육가인 정홍규 신부(대구가톨릭대 교수)가 120여 년 전 이 땅에 왔던 프랑스인 선교사 에밀 타케 신부의 자취를 탐사하며 자연과 창조, 생태와 영성, 환경과 인간에 대해 고민한 기록이다.

에밀 타케 신부는 24세 때인 1898년 조선에 와서 55년간 선교활동을 한 후 1952년, 79세의 나이로 대구에서 선종했다. 그는 부산본당(현 범일성당), 진주본당, 마산본당(현 완월동성당), 제주의 하논성당과 홍로성당(현 서귀포성당), 목포 산정동성당 등의 주임신부를 거치며 선교활동을 했다. 그중 제주에 머물렀던 13년의 기간 동안 1만점 이상의 식물 표본을 채집해 유럽과 미국, 일본의 식물학자에게 보냈다. 그 가운데에는 한라산에서 자생하는 왕벚나무의 표본도 있고 구상나무 표본도 있다. 식물학에 대한 타케 신부의 공적을 기려 학명에 타케티(taquetii)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갯취, 한라부추, 겨이삭여뀌, 섬잔대 등 125종이나 된다.

타케 신부는 같은 임무를 띠고 일본에 파견된 선교사 포리 신부에게 제주 왕벚나무를 보냈고 그 답례로 온주 밀감 14그루를 받았다. 이 온주 밀감 14그루는 지금의 서귀포 감귤산업이 자리 잡는 밑바탕이 됐다.

저자 정홍규 신부는 타케 신부의 자취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발견을 했다. 타케 신부의 자취마다 굵디굵은 왕벚나무들이 아름드리 자라고 있는 것이었다. 제주도의 왕벚나무 자생지야 타케 신부가 처음 발견해 세계 식물학계에 그 존재를 알린 곳이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타케 신부의 사목지였던 마산 완월동의 성요셉성당 앞, 나주의 노안성당과 나주성당, 생의 후반을 보냈던 대구의 남산교구청 안에도 해마다 4월이면 아름다운 왕벚꽃을 활짝 피우는 오래된 왕벚나무들이 있었다. 이것은 필시 타케 신부가 심은 나무가 틀림없으리라. 타케 신부는 제주의 자생 왕벚나무를 세계 식물학계에 최초로 보고했던 기록을 통해 우리에게, 아름답게 피는 벚꽃 아래 더 이상은 ‘일본의 그늘’을 만들지 말라고 위로할 뿐만 아니라 다녀갔던 자리마다 남긴 왕벚나무를 통해 자신의 손길을 아직까지 느끼게 한다.

정홍규 신부는 에밀 타케 신부의 삶에서 생태와 영성, 식물과 신학의 만남을 보았다. 비슷한 말처럼 쓰이는 환경과 생태를 필자는 이렇게 구분한다. “환경이 바깥으로 향하는 것이라면 생태는 안으로 움직인다. 환경은 지식과 정보, 데이터 중심으로 접근하지만, 상호 연결성, 관계성, 그리고 더 큰 진화의 맥락으로 이해하도록 배우는 것은 생태 리터러시다. 한라산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것을 환경이라고 한다면 한라산에서 행성 지구와 인간이 상호 관계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생태 리터러시다.” 리터러시란 문맹 상태를 벗어나는 것, 인지하고 이해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통합적 과정을 말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생태 리터러시는 곧 생태에 대한 문맹을 퇴치하자는 제언이다.

생태학의 기본 법칙은 ‘모든 것은 모든 것과의 관계를 존중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창조물을 통해 신성을 감지한다. 신은 저곳에 있지 않다. ‘신은 만물 속에, 만물은 신 안에’ 있다. 그러므로 ‘생태영성’은 내적으로는 나 자신과 관계의 차원에서는 우리의 이웃들과, 생태의 차원에서는 인간과 비인간 모든 살아 있는 것들과, 영성적으로는 이 모든 차원들과 평온한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온전한 조화는 우리를 탐욕이나 소비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좀 더 단순한 녹색 삶’을 지향하는 선을 세상에 퍼뜨리게 한다.

이 책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요소는 한국 초기 천주교의 역사에 대한 성찰이다. 흔히 이재수의 난, 혹은 제주민란이라고도 부르는 1901년(신축년)의 민중 봉기를 필자는 종교 문제로 인한 사건이라는 뜻에서 ‘신축교안’이라고 부르고, 왜 그러한 사건이 일어났는지 여러모로 고찰한다. ‘오로지 초월만을 추구했던 파리외방전교회’에 대한 비판과,‘향촌민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호교적 선교’이자 ‘지역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선교가 아니라 급속한 교세 확장에만 힘쓴 탓’에 지역민들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자기 반성적 사고를, 다른 이도 아닌 신부의 입장에서 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모든 근대 학문과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에 싹을 틔울 수밖에 없던 한국의 식물학과 그 주도자들의 친일 실상 발견에 대한 고백도 뼈아프다.

이런 성찰들은 다시 ‘가톨릭은 호교적인 선교를 넘어 자연의 영성으로, 식물학계는 지속 가능한 미래 세대를 위한 생태 교육과 체험으로’ 나아가서, 우리의 삶에 생태영성과 문화를 육화시켜 통합생태론을 구축하자는 제안으로 이어진다. 백여 년 전 타케 신부가 남긴 선물을 건네받아 일본의 그늘에서 벗어나 찬란한 벚꽃을 기꺼이 누리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는 ‘창조의 책’ 지구와 더불어 살아가는 일은 이제 우리의 몫으로 남았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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