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청와대와 자유한국당의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다. 당초 문재인 대통령은 정국타개를 위해 지난달 9일 취임 2주년을 맞아 진행한 KBS 대담에서 대통령과 여야대표 회동을 제안했다.

그러나 참석 정당의 범위에 대한 이견이 불거지며 논의는 한달 가까이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자유한국당이 일대일 면담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여야간 대치가 길어지자 청와대에서는 지난달 31일 한국당에 ‘대통령-5당 대표 회동 직후 대통령-황 대표 일대일 회동’을 하자는 절충안을 제안했으나 한국당은 이를 거부했다.

그후 한국당은 이달 2일 ‘대통령-교섭단체 3당대표 회동 직후 일대일 회동’이라는 역제안을 내놨지만, 이번에는 청와대가 거부했다.

청와대는 협치를 위해 출범한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의 정신을 살리기 위해 5당 대표의 전원 참석이 필수라는 입장이다.

국민들은 청와대와 자유한국당의 힘겨루기 속에 국회가 공전되고 있는데 대해 양측 모두에게 매우 못마땅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

물론 막힌 물꼬를 트는 키를 쥔 것이 정권을 잡은 청와대쪽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이 손학규 대표에게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를 뺀 4당 대표와 정국타개 논의를 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했다가 손 대표가 언론에 이 사실을 폭로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 헤프닝에서 청와대가 정치권을 바라보는 시각이 정도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말았다.

강 수석이 비록 이런저런 말로 해명은 했지만 앞뒤 정황을 살펴보면 청와대내에 자유한국당을 빼고 야4당과 정국을 헤쳐나가면 안되느냐는 강경 기류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고, 그런 와중에 “야4당 대표와 논의” 운운한 것은 일종의 ‘간보기’가 이뤄졌다는 심증이 짙다. 정무수석으로서는 매우 치명적인 패착이다.

정치권과 청와대간 의견을 조율해서 국정을 매끄럽게 이끌고 나가야 할 정무수석이 청와대의 강성기류에 휘둘려서 제1야당 패싱 가능성을 가늠해본 사건으로 귀결됐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강 수석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을 상대로 어떤 제안을 하고, 물밑접촉을 할 수 있을 지 알 수 없게 됐다.

이에 앞서 강 수석은 자유한국당이 추경예산이나 법안심의마저 올스톱시켜 국정이 마비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어떤 조건을 받아들이더라도 하루빨리 국회정상화를 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분위기를 청와대에 확실하게 전달하는 것이 옳았다.

즉, 청와대가 자유한국당이 ‘3당대표 회동 직후 일대일 면담’으로 역제안을 해왔을 때 못이기는 체 받아들이도록 적극 설득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 마저도 국정상설협의체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5당 대표가 만나야 한다는 시답쟎은 이유로 거부하고 말았으니 이제 어쩔 것인가.

일단 국회정상화를 위해 대통령과 3당 대표회동과 일대일 면담을 진행한 이후에 국정상설협의체를 재가동해도 되지않나.

양보하고자 마음만 먹으면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닌 것을 원리원칙 따지듯 꼬치꼬치 따지기 시작하면 쉽게 풀 문제도 풀리지 않는 걸 왜 모르나 싶다. 사실 여야가 협치해야 할 국회 정상화의 키를 청와대가 쥐게 된 것도 보기좋은 모양새가 아니다.

청와대는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정부부처를 컨트롤하는 타워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옳다.

어떻든 국회정상화를 둘러싼 여야의 다툼이 길어진 만큼 이제라도 청와대가 마음을 고쳐먹고, 국회 정상화에 필요하다면 당 대표 회동형식에 관계없이 한국당의 제의를 받아들여 막힌 물꼬를 틔었으면 한다. 국민들은 소통과 협치의 국회를 언제나 볼 수 있으려나, 답답한 마음뿐이다.

청와대나 여야 정치권 모두 국가 경제가 힘들고, 서민들 살림살이가 쪼그라드는 이때, 힘과 지혜를 모아 어려움을 헤쳐나가도 시원찮은 데, “때아닌 힘겨루기가 웬말이냐”고 질타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안들리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