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2 때 6·25 참전했던 안동 강명준 옹
장사상륙작전 투입 등 당시 상황 회고
안동농림고 75명의 희생 기린 ‘충의탑’
경북보훈지청 6월의 보훈시설에 선정
이름 없이 스러져간 학도병 발굴 ‘절실’

6·25 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했던 강명준 씨가 안동 한국생명과학고(당시 안동농림고) 출신 학도 의용군 명단을 보여주고 있다.

“나라가 위기인 데 학생이라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교복을 입고 일주일 훈련을 받은 뒤 펜 대신 총칼을 들고 무작정 전쟁터로 뛰어들었습니다.”

6·25 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했던 강명준(87·안동시 옥동) 씨의 말이다. 열여덟, 현재 고등학교 2학년의 어린 나이에 6·25전쟁에 참전했던 강 씨는 안동 한국생명과학고(당시 안동농림고) 학도 호국단에 입단해 참전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9년.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 인민군은 소련제 탱크를 앞세워 남침해 불과 사흘 만에 서울을 함락시키고 3개월 만에 낙동강 유역 아래 경상도 지역을 제외한 국토 대부분을 유린했다. 대한민국 최후의 보루였던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그해 7월부터 9월까지 ‘낙동강 방어선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다. 강 씨는 그 작전에 투입된 육군본부 직할 유격대 소속이었다. 총 3개 대대로 이뤄진 이 유격대 소속 2개 대대는 장사상륙작전에 투입됐고, 나머지 1개 대대에 소속된 강 씨는 중부 전선(안동, 예천, 단양, 제천 일대)에 투입됐다.

강 씨는 “그 당시에는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전쟁에 뛰어들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당시 중부 전선 투입 작전도 인천상륙작전의 양동(陽動)작전으로 실시된 장사상륙작전의 또 하나의 양동작전 중 하나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인천상륙작전보다 이틀 앞서 벌어진 장사상륙작전은 북한군의 눈을 돌리는 데도 성공했지만 인민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데도 성공한 전투로 평가받고 있다. 투입된 병력은 중학생과 고등학생으로 구성된 학도병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특히 지난 2016년 6·25전쟁 66주년을 맞아 6·25전쟁 관련 작전명령서 및 작전지도 일부를 복원해 공개됐다. 공개된 명령서에는 제1, 2군단에게 적을 저지, 낙동강 인근으로 이동하란 명령과 8월 3일까지 낙동강 방어선으로 철수하란 명령 등 구체적인 작전계획이 담겨 있다. ‘작전 명령서 제174호’는 인천상륙작전 직전 후방 교란작전으로 감행된 장사상륙작전과 관련해 현재까지 확인된 유일한 공식 문건이다. 당시 희생된 ‘학도병’을 의미하는 ‘유격대’를 언급한 기록이 담겨 있다.

강 씨는 “9월 장사상륙작전과 인천상륙작전을 계기로 후퇴하는 인민군들이 속출했다”며 “이는 1·4후퇴의 전조현상으로 후퇴하지 못하고 곳곳에 숨어있는 인민군을 소탕하는 작전에 투입됐다”고 말했다. 당시 강원도 지역 한 발전소에 인민군이 숨어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이들을 소탕하고자 강 씨를 포함해 160여 명으로 이뤄진 1개 대대가 투입됐다. 이 작전에서 강 씨는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다고 한다. 강 씨는 “이 작전은 한마디로 벌집을 건드렸던 것”이라며 “당시 이곳에는 인민군 수천 명으로 이뤄진 1개 군단급이 포진해 있었고, 160여 명의 학도병이 감당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1·4후퇴 직전에 마지막으로 인민군이 세력을 키운 계기가 된 작전이었다”며 “이후 강원도 북부지역 대부분을 뺏겼다”고 증언했다.

이후 강 씨는 그해 10월 2사단 32연대 소속으로 군에 정식으로 입대, 군번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강 씨는 40여 년이 지난 1999년 6·25 참전용사 증서를 받고 다음 해에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강 씨처럼 교복을 입은 채 자발적으로 전쟁터로 달려갔던 학생은 수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들에 대한 희생을 추념하는 행사는 드물다. 아직도 참전용사증서와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도 못한 학도 의용군도 수두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한국전쟁에 참전한 학도병들의 나이가 벌써 80을 넘긴 고령으로 해마다 몇 명씩 유명을 달리하고 있어 이들에 대한 업적을 인정하는 조속한 발굴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4일 경북북부보훈지청에 따르면 경북북부보훈지청 당시 군인 신분이 아닌 사람이 6.25 참전 유공자로 인정받으려면 국방부장관이 인정하는 참전 사실 확인서를 받아서 각 지역 보훈지청에 제출해야 한다. 이런 가운데 매년 6.25전쟁 참전 전몰 학도의용군 추념식을 열어 이들의 업적을 재조명하고 호국정신을 기리는 단체가 있다. 바로 안동 한국생명과학고등학교 총동회다. 한국전쟁 당시 아군의 최후 보루인 낙동강 방어선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안동농림고등학교 재학생의 10%에 해당하는 75명의 학생들이 펜 대신 총칼을 들고 군번과 계급장도 없이 오직 구국충정의 일념으로 자진 참전한 것이다.

총동창회는 2015년 6·25전쟁에 참전한 생명과학고 출신 학도의용군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6·25참전 호국학도 충의탑’을 세웠다. 충의탑에는 이 학교 출신 학도의용군 75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또 그 옆에는 이 학교 출신이자 시인인 조영일 씨가 이들을 추모하고자 지은 ‘빛나는 별’이란 제목의 추모시비도 함께 세웠다.

경북북부보훈지청은 이 시설을 올해 6월 이달의 현충 시설로 선정했다. 이들은 6·25전쟁 때 아군 최후 보루인 낙동강 방어선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총칼을 들고 군번과 계급장도 없이 오직 구국충정 일념으로 자진 참전했다고 한다. 이들 중 6명은 낙동강 전선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앞서 국가보훈처는 2016년 5월 6·25참전 호국학도 충의탑을 현충 시설로 지정했다.

/손병현기자 why@kbmaeil.com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