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

정치행정과 경제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시장경제가 충분한 성장경로와 기회를 가지고 있더라도 기업이 속한 지역·국가의 정치행정과 배타적이면 기업 활동이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다. 이와 반대로 특정 기업이 정치행정과 밀월관계를 가지면 시장경제는 교란되고 비효율적인 자원배분과 더불어 다른 기업들은 아예 투자결정을 보류하거나 철회하기도 한다. 이는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인 기업들이 특정 팀이나 선수를 옹호하는 심판인 정치행정으로 인해 반칙을 하지도 않은 자신이 시장인 경기장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과 시장에 대한 불신만 커지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분위기가 확산되면 시장에는 연구개발과 기술혁신을 통한 공정경쟁 대신 규칙을 무시하고 정치행정과의 밀월관계 형성에만 몰두하는 기업들만 늘어나게 된다. 기술혁신과 시장변화에 주목해야할 기업들이 특정 정치행정의 향방에만 안테나를 세우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해당 기업들은 자연 세계경쟁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사실 각종 선거 때마다 이른바 테마주라는 것이 나타나 급등락을 거듭하는 현상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것은 아마도 주식시장에서 이러한 밀월관계가 아직도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정치행정이 굳이 기업에만 신경쓸 필요는 없다. 사회, 복지, 환경, 교육, 문화 등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경제문제는 투표권을 가진 주민들에게 가장 민감한 분야인데다, 기업 경영에 가장 중요한 것은 보다 예측 가능한 정치행정일수록 시장의 불확실한 위험이 줄어들기 때문에 경제의 최일선에 있는 기업과 정치행정이 좀 더 의식될 뿐이다. 때문에 정치행정의 ‘깜짝쇼’는 경제 분야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과거 고도성장단계에서는 대통령제가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흔히 ‘즉각적인’, 그리고 ‘단호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정책결정이 일사불란하게 집행될 때 하나의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일부 부작용이 있더라도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세계경제가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지금, 그때와 같은 ‘단호한’ 정책결정은 선진국들처럼 수년에 걸친 다양한 공청회와 전문가의 견해를 수렴하여 이루어지는 ‘느긋한’ 정책들에 비해 실패에 따른 기회비용이 상대적으로 클 가능성도 있다. 최근 지역 기업의 오염물질 배출과 관련한 지역 정치행정의 ‘단호한 조치’가 있었다고 한다. 반드시 필요한 행정조치는 지역경제가 어려운 것과 무관하게 이루어져야만 불확실성이 해소된다는 점에서 전혀 문제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오염물질이 배출되었다면 그것이 과연 관련 산업의 특성상 기술적, 물리적으로 완전한 차단이 불가능한 태생적 한계인지 여부에 달려 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한 가장 합리적인 접근방법은 어떠한 사안이 발생하였을 때 상황을 파악한 후, 오염물질 배출이 불가피하다면 선진국의 사례도 참고하면서 해당 기업과 같이 대책을 논의하고, 단계별로 실행 가능한 감축계획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행정과 기업 간의 약속을 정치행정이 위반하면 기업은 ‘행정소송’으로, 기업이 위반하면 정치행정은 그때서야 법률에 의거한 ‘단호한 조치’를 발휘하는 것이 순리다.

지역행정과 지역기업의 관계가 배타적이거나 친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세계경제가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경쟁으로 흔들리는 이때 지역경제의 흥망성쇠는 정치행정과 기업과의 관계가 바람직한 관계로 설정되었는지 여부에 좌우되기 쉽다. 때문에 적어도 앞으로의 지역 기업과 정치행정과의 관계설정에서는 어느 쪽이건 일방통행이 아니라 적어도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면서, 상호 배척도 상호 유착도 아닌 상호 협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