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덕대 박물관장 등 조사단
“808년 화강암 비석에 새긴 것”
원화삼년 등 21자 추가 판독

김천 수도암 ‘도선국사비’(이하 수도암비)가 신라 명필 김생이 원화삼년(元和三年, 808)에 쓴 글씨를 새긴 비석이라는 판독 결과가 나왔다.

4일 불교고고학을 전공한 박홍국 위덕대박물관장은 박방룡 신라문화유산연구원장, 이영호 경북대 교수와 함께 김천 수도암비를 조사해 기존 22자 외에 김생서(金生書), 원화삼년(元和三年),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등 21자를 더 판독했다고 밝혔다.

조사단은 추가 판독 결과를 정리한 논문을 신라사학회가 펴내는 학술지 신라사학보에 게재할 계획이다.

화강암으로 만든 이 비석은 청암사 부속 암자인 수도암 약광전 앞에 있으며, 높이 177㎝, 너비 60∼61㎝, 두께 42∼44㎝다.

박 관장은 “비석 끝부분 8행에서 흐릿하지만 다른 글자보다 조금 작게 새긴 ‘김생서’(金生書) 세 자를 찾았다”며 “‘원화삼년’이라는 연호는 6행 중간에 있는데, 후대에 판 도(道)자에 의해 원(元)자가 가로로 절단됐으나 일부 획이 남아 판독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도암비는 신라 말기에 만든 작품으로 알려진 보물 제307호 청암사 수도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의 정확한 제작 연도를 알려주는 자료다. 불교 용어와 옛 글자를 잘 아는 연구자가 모여서 판독하면 15∼25자는 더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박 관장과 이영호 교수, 정현숙 원광대 서예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은 수도암비를 조사한 뒤 김생 사후인 954년에 승려 단목이 집자(集字)해 만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물 제1877호 ‘봉화 태자사 낭공대사탑비’와 필체가 매우 흡사하다는 점을 근거로 김생 진적(眞蹟·실제 필적)이라는 견해를 내놨다.

당시 정현숙 위원은 “전체적으로 북위풍 해서(정자체)로 썼는데, 행서(정자체와 흘림체의 중간)의 필의가 많다”며 “수도암비가 현존하는 유일한 김생 친필이자 태자사비 원본 중 하나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삼국사기에 경운(景雲) 2년, 즉 711년이라고 기록된 김생 출생 시점과 수도암비 제작 시기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박 관장은 “삼국사기 열전이 다룬 인물 중에 출생 연도가 나오는 사람은 김유신과 김생밖에 없다”며 “문무왕이나 그의 동생인 김인문조차도 비문 사망 연도를 기점으로 출생 연도를 파악하는 점을 고려하면 신분이 미천한 김생이 태어난 해를 적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즉 원전이 정확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밝히며 필체를 근거로 김천 갈항사지 동탑 상층 기단 명문, 산청 단속사 신행선사비 글씨도 김생 친필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주/황성호기자 hs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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