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조의 ‘월하가인’(1911)에서 김영하의 ‘검은 꽃’(2004)까지

1904년 황성신문에 실린 ‘농부모집광고’.

과거로부터 우리의 삶에서 발생했던 사건들이 언제나 합리적인 관점에서 설명될 수는 없다. 단지 우연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는, 불합리와 비합리로 점철된 사건들이 버젓이 발생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다. 비정상적인 욕망이나 비규칙적인 충동이 개입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현재이므로,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없는 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역사로 기록된 사실들은 역사가가 갖는 일련의 역사적 관점에 의해 취사선택되기 마련이므로, 역사 속 기록들이 일견 합리적이고, 그럴 법한 것들처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한참이나 지난 시간 이후에 과거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익숙한 질서나 문법 속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정리하기 마련이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에 등장하는 광인조차 전형적인 광인의 문법을 따르고 있는 것을 보면, 그러한 사실이 비교적 명확하지 않은가. 광인은 전형화될 수 없는 대상임에도 우리는 우리가 규정한 전형적인 광인의 모델 속에서 영조와 사도세자라든가 연산군 등을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작 우리의 삶 속에서 겪는 사건들이 그런 식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당시 에네켄 농장에서 일하던 노예들의 모습.
당시 에네켄 농장에서 일하던 노예들의 모습.

다만, 우리가 역사책을 읽는 이유는 기록된 문장 속에 나타난 역사적 사실 자체와 그것이 도래하게 된 합리적인 발생적 근거에 대해 배우고자 함일 것이다.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지금 현재를 살아갈 방향성을 얻는다거나,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일련의 관계에 대해서 확인한다는 감각은 바로 그것에서 온다.

한편, 우리는 늘 역사의 행간 사이에서 아직 기록되지 않은 사실을 욕망하기도 한다. 기록된 역사의 행간에 존재하는 여백을 상상하면서 기록된 역사라는 문자에 숨결을 불어넣는 것이 바로 역사의 독자의 태도가 아닐까. 역사 속에 숨겨졌던 이야기를 찾아내고 상상하는 행위의 즐거움은 확실히 대상에 대한 감정이입에서 비롯되는 감정적이면서 또한 지적인 유희다.

지금까지의 우리 역사 속 많은 장면들이 소설이나 영화로 다뤄졌지만, 그 중에서도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 중에서 백 년에 걸쳐 계속해서 회자되는 사건이 있다. 바로 1905년에 일어났던 묵서가(墨西哥·멕시코의 한자음역어) 이민 사건이 그것이다. 아마 이렇게 말하면 잘 모르실 분이라고 하더라도 ‘애니깽’ 사건이라고 하면, 소설이나 영화로 접한 경험이 있는 독자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1905년 4월 초에 한인 1천33명이 영국 상선인 일포드 호에 실려 제물포항을 떠나 한 달에 걸친 항해 끝에 멕시코 유카탄반도 메리다 지역에 도착했다. 그들은 모두 처음에는 멕시코의 거대한 땅에서 부농이 될 것을 꿈꾸고 배에 탑승하였지만, 처음에 광고되었던 것과 달리 그들은 모두 농장에 노예로 팔려나갔다. 노예로 팔려간 그들은 40도가 넘는 멕시코의 더위 속에서 에네켄(Hen equen)이라는 선인장 농장에서 가시에 찔려가면서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고, 고된 노동과 비인간적인 대우를 견디다 못해 탈출을 시도하거나 병을 얻어 죽은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당시 그들이 팔려갔던 농장에서 기르던 선인장 에네켄이 바로 ‘애니깽’으로 나중에는 그렇게 팔려간 한인들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되었던 것이다.

멕시코로 노동이민을 떠났던 한인들의 사진.
멕시코로 노동이민을 떠났던 한인들의 사진.

사실 이 사건은 지금 생각하더라도 터무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두 속아서 배를 타고, 게다가 노예로 팔려나갔다는 일은 아무리 백 년 이전의 사건이라고 해도 쉽게 믿기는 어렵다. 어쩌면, 이 사건이 그토록 여러 번 소설과 영화로 만들어졌던 것의 배경에는 바로 이 사건이 갖고 있는 이해되지 않는 비합리성이 그 원천이 된 것은 아닐까.

이 사건에 대해서는 작가 김선영이 이미 1992년에 ‘애니깽’이라는 6권짜리 소설을 썼고, 1997년에는 김호선 감독이 장미희, 임성민 배우와 함께 동명의 영화를 멕시코 현지 로케이션으로 제작했다. 사실 97년의 영화는 배우 임성민이 촬영 중간에 간질환으로 사망하여, 미완성으로 남아버렸다. 가장 최근에 작가 김영하는 ‘검은 꽃’(2004)에서 이 사건을 다뤘다.

사실, 기존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이 사건은 이미 1911년에 소설로 쓰였다. 가장 인기 있던 신소설 작가였던 이해조는 이 이야기를 신소설 ‘월하가인’에서 이 사건을 다뤘던 것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심진사’라는 주인공은 ‘윤조’라는 친구의 말을 듣고 묵서가로 떠나는 배를 탄다. 그는 농장에 노예로 팔려나가 갖은 고생을 하게 되고, 그 와중에 친구 ‘윤조’는 죽고 만다. 이후 ‘심진사’는 묵서가에서 고된 노동을 견디다 중국인 ‘왕대춘’을 만나 탈출하게 되고, 미국 화성돈(워싱턴)으로 건너가 공부를 하고 무사히 돌아오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해조가 쓴 소설 ‘월하가인’의 딱지본 출간본(1911년 초판,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이해조가 쓴 소설 ‘월하가인’의 딱지본 출간본(1911년 초판,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천리 바깥 멕시코에 노예로 팔려 간 인물이 중국인의 도움을 받아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다는 어이없는 전개나, 이 이야기에 ‘월하가인’이라는 다소 낭만적인 제목을 붙였던 것은 빈약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작가의 시공간적 인식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실 당시 한국 정부에 멕시코에 노예로 팔려간 이들의 참상이 알려진 것도 청년회원인 정순만이라는 사람이 중국인 하혜(河惠)라는 사람의 편지를 전하면서 알려진 것이라, 이해조가 여기에서 창작적 모티프를 얻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래도 그는 이 작품에서 멕시코에서 온갖 고생을 하고 있는 심진사의 고된 노동 환경이나 의사소통이 거의 되지 않는 어려움 등을 소설을 통해 생생하게 옮겼다.

이후 이 사건을 배경으로 쓰인 소설들은 대부분 일제 통감부가 수립되고 정부가 제대로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던 시기에 부당한 노동이민 사기를 당한 이들의 고통을 부각시키고, 이 사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하는 관점을 보여준다. 당시의 역사를 들춰보면, 그들이 스스로 노예가 되는 노동이민을 선택했던 배경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면도 있다.

1904년 12월 17일부터 무려 한 달여 동안 황성신문에는 “농부모집광고”라는 제목으로 2면에 3단으로 광고가 계속 되었다. 그 광고 속에는 멕시코는 미국과 함께 문명부강국이고 물과 토양이 좋고 기후가 따뜻하여 질병이 없어, 일본과 중국인들이 이미 멕시코에 건너가서 이득을 보고 있다는 찬사가 가득하다. 이번에, 한국과 멕시코가 협의하여 최빈국대우를 받게 되어 이번에 대륙식민합자회사라는 곳에서 농부를 모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면 그럴 듯한 이 광고 속에는 받게 될 월급이나 토지 같은 장밋빛 미래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하다. 게다가 당시로서는 가장 유력한 신문에 실렸던 광고이니 누구라고 믿지 않을 재간은 없었을 것이다.

1996년 미완성작품임에도 34회 대종상 작품상을 수상하여 논란이 된 김호선 감독의 영화 ‘애니깽’.
1996년 미완성작품임에도 34회 대종상 작품상을 수상하여 논란이 된 김호선 감독의 영화 ‘애니깽’.

한편, 가장 최근에 쓰인 김영하의 소설 ‘검은 꽃’은 이 사건에 다소 다른 시각으로 접근한다. 당시 천 명이 넘는 한인들을 태우고 멕시코로 향한 일포드호는 이전까지 존재했던 계층, 성별, 권위 등 모든 허위의식들이 뒤섞이는 멜팅팟(melting pot, 재료들이 끓으면서 섞이는 냄비로 문화혼합을 가리키는 용어)이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그들은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유민이면서, 좁은 세계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로 나아간 일종의 문화적 ‘메스티소’였다.

그래서 김영하의 ‘검은 꽃’을 찬찬히 읽으면, 일포드호 안에서 양반과 상민의 구분이나 남성과 여성의 구분 같은 차이에서 비롯되는 권위의 위계가 어떻게 한 달이라는 배 생활 속에서 깨지게 되는가 하는 것에 대한 묘사가 굉장하다. 어쩌면 그러한 감각은 단일민족에 대한 환상으로 둘러싸여 있던 한국이 처음으로 대면한 문화적 혼합의 경험이다.

김영하의 ‘검은 꽃’(문학동네, 2004년).
김영하의 ‘검은 꽃’(문학동네, 2004년).

이렇게 보면, 이해조는 그 나름대로, 그리고 김영하는 김영하 다운 방식으로 어쩌면 또 다른 유례가 없을 역사적 사건에 다가가 소설로 썼던 셈이다. 앞의 것은 한 인간이 겪는 모험담, 그리고 성장하여 돌아오는 귀환을 담아낸 드라마가 되었고, 뒤의 것은 우리가 처음 겪었던 문화적 혼합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 되었다. 물론 백 년 정도 되는 그 둘 사이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처럼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즐기는 것 역시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얻는 재미가 아닐까. /송민호 홍익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