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광활한 사막에 한 여인이 빗자루를 들고 나타납니다. 30대 후반 독일 초등학교 교사 출신. 쓸모없이 버려진 황량한 땅, 연 평균 강수량이 5밀리미터가 채 되지 않아 식물 한 포기 자랄 수 없는 저주받은 땅에서 이 여인은 빗자루 하나 들고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1930년대 중반 페루 남부 지방에 비행기 노선이 처음 열리자 조정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사막에 거대한 그림들을 조종사가 발견한 거지요. 거미, 독수리, 벌새, 원숭이, 고래, 펠리컨 등. 뚜렷한 여러 생물체의 모양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놀라운 발견에 대해 먹고 살기 바쁜 후진국 페루 정부는 아무도 이 사실에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나스카 라인을 만난 이후 마리아는 단 한 번도 사막을 떠나지 않습니다. 아무도 연구를 지원해 주지 않는 상황에서 굶어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나스카 라인을 연구하는데 생을 불태웁니다. 서울의 두 배가 넘는 면적을 자동차도 없이 맨발로 홀로 오가며 라인이 조금이라도 더 선명하게 보이도록 빗자루질 합니다. 줄자를 들고 다니며 정밀 측량을 시작하지요. 보통은 100미터를 넘는 크기가 대부분이고 지금까지 발견된 그림만 대략 1천 점 가까이에 이릅니다. 측정 결과 약 2500년 전인 BC 500년 무렵의 작품으로 추정합니다.
고독하게 연구를 이어간지 어언 17년. 마리아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습니다. 페루 정부가 아마존 강에서 물을 끌어와 지역 전체를 수몰할 예정이라는 겁니다. 그녀는 온몸으로 저항합니다. 페루 정부의 관계자들을 찾아가 나스카 라인이 얼마나 소중한 인류의 보물인지, 페루의 보물인지를 설득해 냅니다. 마침내 페루 정부는 자신들의 계획을 철회하지요. 1998년 95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 그녀. 나스카 사막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연구를 위한 줄자를 손에서 놓지 않은 마리아 라이헤.
마녀, 도굴꾼, 정신병자라는 비난을 평생 숙명으로 짊어진 채 마리아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습니다. 50년 동안 생계조차 위협받는 극빈의 고통을 견뎌내며 인류 전체의 보물을 건져낸 멋진 여인. ‘빗자루를 들고 사막을 쓸며 후회 없는 삶을 살았노라. 1903-1998’ 묘비에 적힌 글입니다.
인문학을 넘어 리버럴아츠(Liberal Arts)나 고고학, 인류학 등 당장 돈이 되지 않는 분야로 문화의 관심사가 옮겨가야 선진 사회입니다. 보이지 않는 지혜를 추구하는 고급문화로 우리가 한 뼘 더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