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훈 국가정보원장과 양정철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장의 4시간여 비공개 회동에 대한 구설이 호사가들의 입줄을 타고 일파만파를 일으키고 있다. 한 사람은 국가정보기관의 수장이고, 또 한 사람은 집권당 ‘총선 기획’을 총괄하는 자리에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점에서 부적절하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기가 어렵다. 양 원장과 청와대, 민주당이 ‘사적 만남’이라는 점과 ‘총선 얘기가 없었다’는 점을 강변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벗어난 옹색한 핑계에 불과하다.

논란은 서훈 국정원장과 양정철 연구원장이 지난 21일 서울 강남의 한 한정식 집에서 4시간 반 가까이 만찬을 했다는 사실이 한 언론 보도를 통해서 알려지면서 시작됐다. 이 자리에는 MBC 북한 전문기자인 김현경 기자가 동석해 참석자는 모두 세 사람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김 기자는 “총선 얘기는 없었다”면서도 “두 분 만남이 조금 부담스러워서 아마 저를 끼운 것 같다는 생각을 뒤늦게 했다”고 말했다.

여야의 공방이 점차 달아오르고 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국정원장은 정치적 중립 의무가 고도로 요구되는 자리”라면서 “국가정보원장과 최고실세 총선전략가의 어두운 만남 속에서 선거공작의 냄새를 맡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나 원내대표는 “사적인 만남이라고 피해갈 길이 아니다”라며 서훈 국정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반면, 뜻밖의 사태에 잠시 무춤하던 민주당은 새로운 반격 논리를 펼치기 시작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9일 한국당에 “기자가 있는 자리에서 (서훈·양정철이)선거문제를 논의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두 사람의 사적 만남을 빌미로 황교안 대표의 군대 실언, 강효상 의원의 국가기밀 유출 사건을 물타기 하지 말라”고 역공을 시작했다.

이 문제의 본질은 정치 개입이 법적으로 엄금된 국가정보원장과 여당 선거대책 실권자가 사적으로 만났다는 사실 그 자체다. 기자가 그 자리에 있었으니 문제가 없다는 변론이나, 그 자리에서 총선을 위한 음험한 공작이 논의됐을 것이라는 지레짐작들은 아직은 모두 다 억지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혜훈 국회 정보위원장에게 전화번호조차 알려주지 않을 정도로 만남을 가리는 국정원장이 공교로운 시점에 여당 총선전략총책을 만났다는 것은 그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탈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마저 두 사람 만남의 부적절성을 지적하고 나오는 판이다. 이순신 장군은 정8급 하급관리 시절 종친이었던 조선 최고의 명망가이자 선조의 스승 이조판서 율곡 이이가 만나자고 했을 때 이를 ‘부적절하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국정원장과 대통령 최측근 실세의 은밀한 회동은 어떤 경우에도 적절한 ‘사적 만남’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