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섭변호사
박준섭 변호사

자유한국당 지도부가 몇 주간 장외투쟁을 하였다. 연동형비례대표제에 관한 선거법개정 등 패스트 트랙으로 상정한 법률 때문이다.

이를 두고 여야4당은 이제 장외투쟁은 과거의 투쟁방식이고 반민주적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사태의 본질은 그것이 아니다.

여야 4당의 의원수가 의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회로 들어가서 논의를 진행해 봐야 선거법개정안이 통과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 4당이 형식적인 다수결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자유한국당을 비민주적인 행태라고 압박하는 것은 잘못된 프레임에 가둬 놓은 채 악의적인 비방을 하는 것에 가깝다. 오히려 현대 민주주의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여야4당이 생각하는 민주주의가 더 문제 일수 있다.

그것은 현대의 민주주의는 다수의 절대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단순히 형식적 다수가 결정하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 평등, 정의와 같은 실질적인 가치가 실현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정치적 의사형성의 개방적 과정에 있다.

다수는 절대적 최종적 진리임을 주장할 수 없고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순간의 우위’에 불과 하다.

이는 다수이기만 하면 어떤 내용이라도 상관없다는 상대적 민주주의를 취했던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이 전체주의 나찌에게 권력을 넘겨주었던 역사로부터 우리는 뼈저리게 배웠고 현대는 그런 민주주의를 민주주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개정은 소수당의 의원수가 느는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대통령제 권력구조의 변동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소수의석을 가진 다수당이 난립하게 됨으로써 우리 헌법상의 의원내각제 요소가 부각될 것이다.

의원내각제 요소가 부각되면 현실적으로 대통령제가 아니라 이원집정부제로 운영해야 할 수도 있다. 현행헌법의 해석상으로 이것이 가능하기는 하겠지만, 국민들이 과연 원하고 있는가. 국민들에게 선거법개정이 이런 권력구조변동을 초래한다는 것을 제대로 알리기는 하였는가.

지금의 여야4당이 확보한 “순간의 우위”인 다수만으로는 지속적으로 헌법상의 국가권력구조에 영향을 미칠 선거법개정을 하기에는 실질적인 관점에서 보면 민주적 정당성이 미약하다.

거부권 정치가 여전한 현실에서 연정과 협치를 할 준비도 하지 않은 채, 그리고 1년도 채 남지 않은 다음 총선을 앞두고 개정이후의 사항들이 구체적으로 합의도 되지 않은 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준비도 부족한 상황에서 국회의석의 1/3이 넘는 제1야당이 반대하는 선거법개정을 다수의석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자유, 평등, 정의를 지향하는 현대의 민주주의이념에 반한다.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은 그들의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우리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해 준다.

그들은 모든 성공적인 민주주의는 ‘비공식적인, 보이지 않는 규범’에 의존한다고 하면서, 비록 이러한 규범은 헌법이나 법률에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지만 시민사회에서 널리 존중 받는다고 한다.

그들은 영국왕이 총리를 임명할 권한을 갖지만 스스로 임명하지 않고 하원의 다수당의 대표에게 총리를 맡겨온 것과, 미국이 헌법에 명문의 규정이 없을 때에도 두 번의 임기만 허용하였던 임기제한규범도 예로 든다.

우리나라는 민주화 이후에 수 십년간 선거법이 일방적으로 강행처리 된 적이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야당시절에 ‘선거법은 경기의 규칙이다. 지금까지 일방의 밀어붙이기나 직권상정으로 의결된 전례가 단 한 차례도 없다’고 하였다. 이것은 선거법 개정은 합의에 의해 처리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규범’이 과거부터 존재해 왔다는 의미이다.

이제 여야4당은 자유한국당을 시대착오적인 반민주세력이라고 몰아붙일 것이 아니라 자신들 스스로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잘 성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