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비가 있습니다. 서재를 짓고 이름을 ‘통곡헌(慟哭軒)’이라 짓습니다. 모두가 비웃습니다. 세상에 즐거운 일이 얼마나 많은데 하필이면 서실의 이름을 통곡(慟哭)의 집(軒)이라 이름을 짓는다는 말인가! 수군거리고 손가락질합니다. 어떤 이는 서찰을 보내 정식으로 유감의 뜻을 전합니다.

선비는 붓을 들어 답합니다. “나는 세상이 좋아하는 것과 반대로 하는 사람이오. 세상 유행이 기쁨을 즐기므로 나는 슬픔을 좋아 하오. 세상 사람들이 즐거움을 누리므로 나는 또한 근심을 즐거워 하오. 세상 사람들은 부귀영화를 얻으면 기뻐하지만 나는 내 몸을 더럽히는 것처럼 여겨 내팽개치오. 가난하고 천박하며 궁색한 삶을 본받아 몸을 거처할 뿐이오. 나는 세상의 모든 일과 반대로 하려 하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을 선택하자면 통곡보다 더한 것은 없기에, 내 서실의 이름을 통곡헌이라 지었소.”

선비의 이름은 허친(許親). 조선 중기 문인입니다. 그의 소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구한 말들이 많자 삼촌이 나서 조카를 변호하는 글을 씁니다. 통곡헌기(慟哭軒記)라는 유명한 문장입니다. 홍길동전을 쓴 조선의 반항아, 허균이 바로 허친의 삼촌입니다.

“나는 비웃는 자들을 책망하며 말하였다. ‘무릇 곡에도 도가 있는 법이다. 대체로 사람의 칠정은 움직이기 쉽지만 감동이 일어나는 것으로는 슬픔만 한 것이 없다. 슬픔이 지극하면 반드시 곡을 하게 되는데 슬픔이 오는 방식 또한 여러 가지다. (중략) 국사는 날로 더 그릇되어가고 선비들의 행실은 날로 구차스럽고 경박하다. 벗과의 사귐은 배신으로 치달아 갈림길의 나뉨보다 더욱 심하여 현명한 선비들의 곤란함은 길이 막다른 처지에 있을 뿐만 아니라 모두들 세상 밖으로 숨을 궁리들만 한다. 만약 여러 군자들로 하여금 이 시절을 보게 한다면 어떤 생각을 품게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장차 통곡할 겨를도 없이 모두들 팽함이나 굴원처럼 돌덩이를 품에 안고 물속으로 뛰어들고자 하겠지. 허친이 곡으로써 편액을 삼은 것도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여러분들은 그 곡을 비웃지 않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비웃던 자들이 물러났기로, 기록을 하여 이로써 무리들이 의심하는 것을 풀었다.”

연암 박지원은 요동 벌판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울음터로다. 한 바탕 울어 볼 만하구나!” 겉 보기에 멀쩡하지만 속으로는 공허와 무의미로 병들어가는 세상을 바라보며 통곡할 수 있는 그대 뜨거운 가슴이 필요한 때입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