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남편의 정치적 성공을 위해 떡볶이 장사까지 하며 뒷바라지를 했던 여인이 골프채에 맞아 처참하게 숨졌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과 여성단체는 아무런 말이 없다. 민주당 소속 유승현 전 김포시의회 의장 이야기다. 우리 정치와 사회가 얼마나 천박한 의식에 발목이 잡혀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이 비극적 장면은 이 나라가 정말 온전한 상황인지를 깊이 의심케 한다.

‘박근혜 망신주기’ 드라마는 여전히 연장 방영 중이다. 박 전 대통령의 방중(訪中) 연설 문구를 놓고 최순실이 정호성 비서관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하는 내용의 녹음파일이 폭로됐다. 지금 시점에 왜 이 녹음파일이 공개됐을까 하는 의구심을 넘어, 국정 경험도 직책도 없는 최 씨가 대통령의 연설문 문구를 좌지우지하는 대목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대목이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장외투쟁 ‘민생투쟁대장정-국민 속으로’ 일정이 마무리됐다. 황 대표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크게 높였고, 한국당에 대한 국민지지율도 상승시키는 성과도 거뒀다. 그러나 극한대결로 치닫는 여야 정치권의 비정상 기류가 개선되기는커녕 악화된 측면이 있다는 차원에서 숙제도 많이 안게 됐다. 여야 정치권의 막말 대치는 더욱 험악해지는 형국이다.

여야 정치권의 맞대결 구도에서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은 집권 여당 대표의 정치력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부분이다. 걸핏하면 ‘장기집권론’을 부르대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집권세력의 선두에서 칼을 휘두르는 용맹한 졸병의 역할에 줄곧 머물고 있다. 패스트트랙 갈등국면에서도 야당을 조준해 “도둑놈들한테 이 국회를 맡길 수 있겠냐”고 공격하는 게 고작이었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우상호 의원은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를 겨냥 “지금 좀 미친 것 같다”고 막말을 했다. 5·18 민주화운동 39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날린 직격탄은 더 문제다. 한국당의 ‘좌파독재’ 공세를 문 대통령은 ‘독재자의 후예’라는 말로 되돌려줬다. 영부인 김정숙 여사는 황교안 대표와의 악수를 건너뛰고도 사과 한마디 없이 고의성을 시인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광주 발언에 대해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진짜 독재자의 후예에겐 말 한마디 못하니까 여기서 지금 (김정은의) 대변인 하고 있지 않나”라고 예민한 부분을 건드렸다. 이주영 한국당 의원은 “‘남로당의 후예가 아니라면 천안함 폭침을 다르게 볼 수 없다’고 되돌려줘야 한다는 비아냥 소리를 여기저기서 많이 듣는다”고 공박했다. 5·18 기념식에 참석하려는 황교안 한국당 대표를 향해 이정미 정의당 대표의 ‘사이코패스’라는 공격은 막말의 극치다. 이정미 대표의 발언 논법을 패러디하는 가정법을 동원해 거꾸로 되받아친 한국당 김현아 의원의 ‘한센병’ 발언 파문도 심각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렇듯 정치권의 험구는 좀처럼 개선되기 어려운 난치성 유행병이다.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정치권은 어느새 욕지거리 난장판이 돼가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촛불 정신’을 앞세운 문재인 정권은 왜 이렇게 정국을 험악하게 이끌어가는 것일까. ‘적폐청산’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포장한 포퓰리즘의 화신이 되어 나라 곳곳에 과거의 ‘쓰레기통’ 엎어놓고 매타작하는 일에 몰두하다 보니 ‘국민의 대통령’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라 경제마저 거덜이 나고 있는 중이다.

백성들이 다 죽어가는 데도 권력만 줄창 탐할 것인가. 국민도 없는 땅에서 그 알량한 권력들 어디에다 써먹을 참인가. 민생을 살리기는커녕 모두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몹쓸 ‘증오 정치’부터 청산해야 한다. 미래를 이야기하고, 희망을 주는 정치를 펼쳐야 한다. ‘죽이는’ 정치가 아니라, ‘살리는’ 정치를 해야 한다. 민생을 지옥으로 몰아가는 이 ‘증오 정치’의 역습으로부터 영원히 탈출할 새길을 찾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