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시 하나의 풍경
알바니아와 기형도 시인

① 고요히 흐르는 강과 낮은 지붕의 집들이 평화로운 풍경을 연출하는 베라트.

그간 여행했던 유럽 다른 나라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펼쳐지는 푸른 들판은 한국의 1970~80년대 시골 풍경과 닮아있었고, 빨간 지붕의 야트막한 집들이 정겨움을 불렀다.

수도인 티라나(Tirana)는 물론 마을 앞을 평화롭게 흐르는 강이 인상적인 조그만 도시 베라트(Berat)에도 이슬람교 성당인 모스크(Mosque)가 높은 첨탑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익숙하고, 또 다른 면에선 생경한 모습들.

동유럽 발칸반도에 자리한 알바니아는 1479년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았다. 그 영향 때문일까. 유럽 어느 국가보다도 무슬림(Muslim·이슬람교를 믿는 사람)의 비율이 높다. 알바니아의 인구는 약 360만 명. 이중 70% 이상이 무슬림이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가톨릭신자는 약 10% 정도에 불과하다. 머리가 두 개인 독수리를 형상화한 국기와 이슬람 생활양식으로 여행자들에게 알려진 나라.
 

질투는 나의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 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② 다른 유럽 국가와 달리 알바니아에선 이슬람교 성당인 모스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② 다른 유럽 국가와 달리 알바니아에선 이슬람교 성당인 모스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 잊을 수 없는 풍경과 사람들, 그리고…

국경을 접한 마케도니아에서 티라나로 들어가 고풍스런 매력이 물씬한 베라트와 짙푸른 해변을 가진 사란다 등의 도시를 떠돌았다. 알바니아는 몇몇 국가들과 종교와 인종으로 인한 불화를 오랜 시간 겪었으나, 그와는 별개로 국민들은 친절하고 쾌활했다.

시장에선 “이것 한 번 맛보라”며 낯선 여행자에게 큼직한 자두를 건네는 상인이 적지 않았고, 시골 마을 노인들은 자기 동네를 찾은 이들에게 달콤한 홍차 한잔을 내미는 것으로 여독(旅毒)을 달래주기도 했다.

목가적인 풍경과 따스했던 사람들. 그것들과 함께 잊을 수 없는 게 또 있다. 바로 알바니아에서 만난 연인들.

모두가 알다시피 이슬람 국가에선 결혼하지 않은 남녀 사이의 연애를 어떤 형태로든 통제한다. 그 통제가 때로는 ‘명예 살인’ 같은 흉악한 양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자유연애’가 일상화된 국가에서 보기엔 끔찍한 일이다.

중동이나 아랍 지역만큼은 아니지만 알바니아 역시 이슬람 생활양식이 보편화된 곳이니 미혼남녀의 연애가 마냥 자유로울 수는 없을 터. 특히 종교와 인종이 다른 상대와의 사랑은 쉬운 일이 아닌 듯했다.

그러나, 세상 어떤 규제와 제약이 심장으로 향하는 피가 펄펄 끓는 청춘들의 연애감정을 완벽하게 막을 수 있겠는가.

당연지사 알바니아 처녀, 총각도 사랑을 한다. 기자가 직접 봤기에 단언할 수 있다.

베라트의 허름한 게스트하우스. 사흘을 머문 그곳에서 독일 사내와 알바니아 여자의 애틋한 연애를 지켜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인종과 종교가 모두 달랐다. 하지만 그 연인은 이미 세상이 강제한 금기를 훌쩍 뛰어넘은 것처럼 보였다.

티라나에선 헤어지기 아쉬워 한참 동안 서로의 몸에 감은 팔을 풀지 못하는 또 다른 연인을 만났다. 자정을 넘긴 늦은 밤. 카페 뒤 어두운 골목이 둘이 뿜어내는 뜨거운 빛으로 환해지고 있었다.

그 순간 보았다. 서른이 되기 전 세상에서 사라졌지만, 시와 시인을 아끼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선 여전히 스물아홉 청년으로 살아있는 기형도(1960~1989). 그의 시 한 편이 칠흑처럼 검은 하늘에 새하얀 휘장으로 펼쳐지는 걸.

③ 알바니아의 조용한 마을 베라트. 이곳에서 세상의 편견을 넘어선 젊은 연인을 만났다.
③ 알바니아의 조용한 마을 베라트. 이곳에서 세상의 편견을 넘어선 젊은 연인을 만났다.

▲ 아름다운 세상을 완성하는 건 결국 ‘사랑’이 아닐까

‘질투는 나의 힘’을 접한 문학평론가 권영민은 “자신이 청춘을 되돌아보면서, 미래의 나는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희망은 다만 타인의 삶을 향한 질투뿐이었음을 깨닫고 있다”고 평했다.

여기에 한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완성된 형태의 사랑을 가져보지 못했던 ‘청년 기형도’는 ‘탄식’과 ‘질투’로만 점철된 세상 속에서도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는’ 것으로 비루했던 한국의 20세기 말을 견뎌내지 않았을까?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젊은이들의 사랑은 유사한 양식과 지향을 가진다. 스스로 제어하기 힘든 열망과 환희, 여기에 때때로 쓰라린 고통을 동반한다는 면에서 한국과 알바니아의 연애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게 분명하다. 베라트에서 만난 기독교도 독일 청년과 이슬람교 신자인 알바니아 여성의 연애는 언제 어디에서 돌팔매를 맞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수난 또한 둘의 사랑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우리가 역사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수많은 ‘러브 스토리’처럼. 오늘이 살아있는 마지막 날이 아님에도 마치 내일이 없는 사람들인양 격정적으로 포옹하던 티라나의 연인. 그들이 보수적인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두려워할 까닭이 없다. 왜냐? 서로를 향한 둘의 사랑은 세상을 뒤엎을 용기도 줄 수 있으니까.

20대 초반 풋풋하고 젊은 알바니아 연인들의 달콤한 입맞춤을 부러운 눈길로 지켜본 그날 밤. 아주 오래전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새벽 무렵, 아래와 같은 졸시 하나를 완성할 수 있었다.

1982년, 열두 살 그 소녀에게

기억은 그믐밤 회랑 같은 것이라

헛디뎌 계단을 구르는 경우가 흔했다

삼십 년 전, 어둠에서 비를 맞고 섰던 게

너였는지 혹은, 나였는지

제 두려움에 떨던 우리 안 두억시니였는지

그날 그랬듯 지금도 알 수 없지만

실핏줄 내비치던 네 파리한 뺨을 꿈꾼 날이면

아열대 스콜 속을 걷는 양 끼쳐오는 열기

용기보다 변명을 먼저 배운 건 가난 탓이고

코흘리개 어린 주먹도 거짓말은 싫었지만

어떤 어른도 아이를 안아주지

않던 시절

억지 굴신을 가르친 군인에게선

박하향 로션으론 가릴 수

없는 죽음의 냄새

비굴하게 웃던 선생들 모진

매질 견디며

꺾인 무릎으로 표류하듯

살았는데

허나, 너를 떠올릴 때만은

터무니없는 동화처럼 눈부신

초여름 빗줄기

새빨간 양귀비꽃처럼 터지던

웃음

매혹에 중독돼 다시금 견뎌야 할 세상

마흔이 돼서야 온전히 살아낸 열두 살.

 

④ 무슬림이 다수인 알바니아. 모스크 아래를 청춘 남녀들이 걸어가고 있다.
④ 무슬림이 다수인 알바니아. 모스크 아래를 청춘 남녀들이 걸어가고 있다.

알바니아 여행에서 돌아온 지 벌써 몇 해가 흘렀다. 기자가 갔을 땐 동양인을 만나기가 힘들었는데 최근에는 상황이 변했다고 한다.

TV 속 세계여행 프로그램이 “이제 알바니아를 찾는 한국 관광객이 적지 않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어쨌건 알바니아는 아름다운 여행지가 분명하다. 초록빛 옥수수밭을 흔드는 부드러운 바람과 고요한 시골길, 모스크 지붕에서 흩어지는 눈부신 햇살은 쉬이 잊히지 않을 추억을 선물한다.

여기에 하나 더. 인종과 종교, 국경까지 넘어선 연인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사랑의 풍경’은 더 말해 무엇할까.

사진제공/류태규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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