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경제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경제보고서의 왜곡인용이 문제가 되고 있다. 사건의 요지는 OECD 공식 보고서에서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를 감소시켰다는 분석이 나오자 기획재정부가 국내 번역본에서 이 내용을 통째로 들어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기재부가 국제기구 보고서를 번역해 언론과 대외에 제공하면서 정부 정책에 유리한 내용만 선별해 보고서 ‘왜곡’이란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기재부가 지난 22일 번역해 발표한 ‘OECD 경제전망 보고서’ 원문에는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019~2020년 사이 2.5%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국내 수요와 국제무역의 약세를 반영한 것”이라며 “제조업 분야의 구조조정과 두 자릿수의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 창출을 더디게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목이 OECD 보고서의 핵심이었다. OECD는 이어 “낮아진 경제성장은 고정투자 감소와 낮은 일자리 창출에 부분적으로 기인한다”며 “이는 제조업 분야 구조조정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더불어 2018~2019년 사이의 29%에 달하는 최저임금 인상이 취업을 어렵게 했다”고 설명했다. OECD는 특히 “노동생산성 증가가 동반되지 않는 이상 추가적인 최저임금 인상은 일자리를 감소시키고 한국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기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OECD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경제전망에서도 최저임금의 추가적인 큰 폭의 인상이 고용과 성장에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점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기재부는 “언론의 보도편의를 위해 요약·정리한 내용”이라고 해명했지만 정부가 강조하고 싶은 확장적 재정정책 부분은 고스란히 번역본에 포함돼 있어 ‘아전인수’란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러니 국가 재정의 토대를 굳건히 하고, 국가 백년대계를 꾸려야 할 기재부가 앞장서서 재정건전성을 포기하고 총선 캠프로 변신한 민주당 정권의 재정집사 노릇하려는 것 아니냐는 야당의 비판에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이에 앞서 지난 21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최저임금 현장 실태 파악’ 보고서에서도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이 감소했다는 내용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소득주도 성장과 최저임금 인상 정책은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했고, 이낙연 국무총리는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경제가 나빠진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정확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고 강변했으며, 홍장표 전 경제수석은 “최저임금이 인상되자마자 1분기에 일자리가 대폭 줄었다면 그건 소설”이라고 주장한다. 문제점이 드러난 경제정책을 바꾸려 하지 않는 정부를 보며 이런 일화가 떠올랐다.

어느 주막집에 드러누운 게으른 개가 있었다. 날이면 날마다 그 개는 같은 자리에 드러누워서 끙끙 앓았다. 주막에 올 때마다 개가 칭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어느 선비가 주모에게 물었다. “여보시오, 저 개 어디 아픈 거 아니요?” 주모가 대답했다. “아, 못이 박힌 나무 위에 누워서 아프다는 거에요.” 당황한 선비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왜 다른 곳에 누워서 쉬지 않는거죠?” 주모가 대답했다. “아직 덜 아픈거죠.”이미 힘든 민초들이다. 지금보다 더 많이 아파야 한다면 미련하거나 무모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국민들은 마냥 답답하다. 정부 보고서에서도, 국제기구의 경제보고서에서도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 보완 내지 수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는데도 정부와 청와대의 대응은 ‘마이동풍’‘오불관언’이기 때문이다. 야당의 주장처럼 현 정부가 추진중인 이른바 ‘소득주도성장’정책이 자기최면이나 희망고문에 그칠 경우 그 후환은 누가 감당하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수결로 선택한 결과이니 마땅히 받아들이라 한다면 참으로 분통터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