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것, 마음의 상처를 받을 때까지 줄곧 그래야 한다
사랑한다는 것, 마음의 상처를 받을 때까지 줄곧 그래야 한다
  • 윤희정기자
  • 등록일 2019.05.23 18:41
  • 게재일 2019.0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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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쓸쓸한 사람 가운데’

리자퉁 지음·문학동네 펴냄
인문·1만3천500원

대만의 사유하는 공학자, 리자퉁 교수의 ‘외롭고 쓸쓸한 사람 가운데‘(문학동네)는 그가 대만의 일간지 연합보(聯合報) 문예칼럼에 연재했던 글들을 묶은 책으로 1995년 출간 후 30만 부가 팔린 스테디셀러다. 리자퉁은 대만의 칭화대학교, 징이대학교, 지난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교육자다. 오랜 기간 그 자리에서 고민하고 사유했던 생각들을 칼럼에 담았다.

리자퉁의 글은 관념적이지 않다. 그는 친구들과의 대화, 신문기사, 영화, 그림 한 편 등을 접하고서 영감을 얻는다. 즉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것이 글감이 된다. 나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글은 어떤 주의나 사조류의 분석이 될 수 없다. 때문에 편안하고 익숙한 그의 글에는 진실함과 사랑스러움이 담겨 있어 잔잔한 감동과 여운을 자아낸다.

소탈하고 담담한 문체는 그의 ‘배경과 이력’을 떠올리면 다소 의외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대만의 명문가 태생이다. 그의 증조부는 청나라 말기의 정치가이자 중국 근대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인 이홍장(1823~1901)의 친형 이한장(1821~1899)이다. ‘이한장’ 역시 청나라의 대신으로, 양광총독까지 지낸 세력가였다. 리자퉁은 대만의 명문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버클리대학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은 후 다시 대만으로 돌아와 대학교수에 이어 총장직을 연임했다. 전형적인 엘리트코스를 밟았으나 젠체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를 “멍청한 늙은이”라 칭하며 제자들의 배려나 관심을 과분해하고, 자신은 좌우명을 갖기에도 모자란 사람이라고 시종 겸허한 태도를 유지한다. 이런 삶의 태도가 그의 글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리자퉁 자신이 직접 겪은 바를 이야기하는 글 중 백미는 테레사 수녀를 만나고, ‘임종자의 집’에서 봉사를 하며 얻은 깨달음이 담긴‘높은 담을 헐어버리자’를 꼽을 수 있다. ‘높은 담을 헐어버리자’는 이 책의 대만판 원제이기도 하다. 천주교 신자인 리자퉁은 본인의 신앙과 신념을 따라 줄곧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 인도 콜카타로 건너가 테레사 수녀를 만나는 기회를 갖게 된다. 리자퉁은 테레사 수녀가 운영하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호스피스 병동인 ‘임종자의 집’에서 머물며 사흘 간 봉사를 하다 충격적인 광경을 목도한다. 줄곧 가난한 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자부했던 자신이 정작 진정한 빈곤과 불행은 회피해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오십육 년 이래 편안했던 날들이 갑자기 자리를 내주는” 경험이기도 했다. 그간 무슨 의미인지 와닿지 않았던 “한 조각의 순결한 마음이어야, 자유롭게 베풀 수 있고,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다, 마음의 상처를 받을 때까지 줄곧 그래야 한다”는 테레사 수녀의 말을 섬광처럼 이해하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쉰을 훌쩍 넘은 나이, 리자퉁은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완전히 변하는 경험을 한 후 한참을 눈물을 흘린다. 그러고는 우리의 마음에 있는 ‘높은 담’을 헐어버리자고 힘주어 말한다.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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