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열한동대 교수
장규열 한동대 교수

놀랍고 반가운 일이 벌어졌다. 애틀란타의 작은 사립대학 모어하우스칼리지(Morehouse College)에서 졸업축하 연설을 하던 로버트 스미스(Robert F. Smith)가 올해 졸업생들의 학자금대출을 모두 갚아주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를 들은 졸업생들과 교수들은 물론 단상에 앉아있던 총장마저도 처음 듣는 이 경이로운 소식에 놀랄 뿐이었다. 약 400명에 달하는 졸업생들은 이제 졸업하면 거친 사회에 나가 바로 그 대출금을 갚아야 할 처지에 놓였던 터에, 이 소식은 그야말로 크나큰 해방감을 가지게 하였을 것이다. 그가 대신 갚아 줄 대출금은 줄잡아 5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부호라서 후배들을 위하여 선뜻 좋은 뜻을 발휘한 일이지만,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이 정도의 후의를 발휘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언론은 그가 거액을 내어놓았다는 점에만 주목하고 있지만, 그 발표 바로 앞뒤에 그가 무엇이라고 하였는지 주목하여 보자. 발표 직전에 그는 ‘졸업생 여러분에게 한 가지 도전하고 싶다’고 하였다. 졸업생들을 위하여 거액을 희사하겠다고 발표할 것이면서, 바로 그 기부행위가 당신들에게 구체적인 도전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어떤 도전이었을까. 대출금상환을 위한 기부를 실현하겠다고 말하고 나서, 그는 ‘여러분이 사회에 나가 꼭 같은 일을 다시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던지며 열심히 살아 달라’고 요청하였다. 졸업생들은 물론 함성과 함께 박수로 반응하였다.

오늘날 대학교육비가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있음을 생각할 때, 학생들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을 대출금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웠을까. 한 순간에 이를 갚아 주겠다는 선배는 얼마나 감사한 천사였을까. 기부와 함께 선배가 던진 도전의 의미를 그들은 얼마나 무겁게 받았을까.

모어하우스칼리지는 미국 인권운동의 상징격인 마틴루터킹(Martin Luther King, Jr.)목사를 배출한 대학이다. 1948년에 졸업한 그가 그 유명한 ‘내게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연설을 통하여 미국흑인 인권역사를 바꿔내기까지 그를 사로잡았던 것은 대학에서 가르친 ‘삶을 함께 나누는’ 기준이었다고 한다.

‘모든 이들이 누릴 수 있는 세상을 구현하기 위하여 신념과 소신을 가지고 노력하되, 그 모든 소득과 이익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공동체를 실현하며 살아라.’ 졸업식 연설을 맺으며 그는 이 생각을 졸업생들과 함께 다시 힘주어 다짐했을 것이다. 학교와 공동체의 전통이 만들어지고 세대를 타고 흐르는 모습을 세계가 목격한 것이다. 이를 언론이 보도함에 있어 ‘돈의 크기’에만 집중한 것은 사뭇 아쉬운 부분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자본주의의 본산인 미국에서 오히려 의미있는 기부와 뜻을 새긴 다짐이 일어나고 있는 때에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경제와 재정은 돈보다 높은 가치의 발현을 위하여 얼마나 수고하고 있는가. 재력이 소중한 디딤돌이 되어 도처에서 선하고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도록 우리는 가르치고 있는가. 수고와 노력을 기울여 쌓아올린 경제력을 이웃과 사회에 희망이 되도록 후하게 내어놓는 부자들을 더 자주 만나보고 싶다. 욕심으로만 쌓으면 남을 위하여 쓸 준비를 할 겨를이 없을 터이다. 벌기 전에 다짐하는 훈련도 필요하지 않을까. 자본주의에 충실한 시스템을 신뢰하되, 어려운 이웃이 가진 가능성과 미래를 향한 도전에 믿음과 기회를 제공할 줄도 아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졸업식 연설을 마치면서, 선배 연사는 졸업생들을 모두 일으켜 세우고 서로 포옹할 것을 요청하였다. ‘성공적인 삶을 살아내기 위하여 누구보다 열심히 살되, 성공의 결실은 반드시 당신이 속한 공동체와 함께 나누는 사람이 되라’고 힘주어 강조하였다.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 당신의 성공은 누구와 어떻게 나눌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