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오랜만에 음성만 들었어도 너무 반가웠는데…(중략) 무심히 흘러간 세월 속에서도 그 누군가의 기억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네.(중략) 비록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험한 가시밭길 헤쳐 온 지난날 생각하며 열심히 또 열심히 하시게. 아울러 계획하고 추진하는 모든 일들을 통해 날마다 보람으로 마음 가득하길 멀리서 기원하겠네. 어제 우연히 버려진 신문 속에서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과 귀한 글(마을이 있는 학교) 잘 읽었네. 글 속에 담겨진 그 아름다운 소망이 산자연중학교에서만이라도 꼭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겠네. 고맙네.”

고등학교 은사(恩師)님으로부터 온 장문의 문자 메시지이다. 몇 년째 안부를 몰라 5월이 다가오면 걱정이 더 컸던 은사님과 올해는 다행히 연락이 닿았다. 선생님께서는 건강하시다는 말씀과 함께 그동안의 근황에 대해 알려주셨다.

그리고 마지막에 “요즘은 교육청에서 지원을 해주는가?”라며 학교 상황에 대해서 물어보셨다. 선생님께서는 교육청의 지원 없음에 대해 늘 안타까워하셨다. 그 안타까움은 대한민국 중학생이면서도 교과서마저 자비로 사서 공부해야 하는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에 대한 걱정에서 기인(起因)한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필자는 죄송할 따름이었다.

“선생님, 아직은 교육청의 지원이 없지만 학교급식법 개정안 등 대안학교 지원에 대한 분위기가 마련되고 있습니다.” 필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선생님의 짧은 탄식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모든 선생님들께서 열심히 하고 있으시니 분명 빠른 시일 내에 좋은 소식 있을 걸세! 학생들을 위하는 마음, 그 마음만 잃지 마시고 최선을 다 하시게!” 지금의 필자를 있게 한 선생님만의 희망 가득한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였다. 희망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던 필자의 20대, 그 어둡고 길기만 하던 20대의 험로를 필자가 꿋꿋이 헤쳐나 갈 수 있도록 불 밝혀주신 바로 그 등대와도 같은 말씀이셨다.

2년여의 걱정을 떨쳐버리는 은사님과의 통화가 있은 다음 날 아침, 아직 많은 것이 부족한 제자가 걱정 되셨던지 선생님께서는 위에 인용한 장문의 응원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필자는 꼭 말씀드리고 싶었던 감사한 마음을 답장으로 보냈다. “선생님께서는 제가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저를 다시 낳아주셨습니다. 낳아주신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지금의 제 모습을 만들었습니다. (중략) 늘 선생님께서 심어주신 뜻을 생각하며 더 열심히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선생님! 다시 한 번 제가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필자는 은사님(전 경주문화고등학교 허상수 교장 선생님)을 생각하면 늘 고등학교 1학년 때가 떠오른다. 그 때는 문과(인문계)와 이과(자연계) 선택을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때 하였다. 수학을 좋아했던 필자는 큰 생각 없이 이과를 선택했다. 당시 국어선생님이셨던 은사님께서는 계열 선택 이후 매 시간 들어오셔서 문이과 선택에 대해 손을 들게 하셨다. 필자는 당연히 이과에 계속 손을 들었었다. 다섯 번째 시간에 선생님께서는 필자를 교무실로 부르셨다. 그리고 필자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문과를 추천해주셨다. 만약 그때 선생님께서 계시지 않으셨다면, 지금의 필자는 있을 수 없다. 필자는 지금까지의 선택 중에서, 또 앞으로의 선택 중에서도 그때의 선택만큼 최고의 선택은 없다고 확신한다.

필자는 확신에 찬 그때의 선생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필자는 그 모습을 닮은 교사가 되기 위해 교직을 선택하였다. 하지만 나름 노력한다고는 하고 있지만, 은사님의 근처에도 못가고 있다. 필자에겐 그래도 기억할 선생님이라도 계신데, 지금 우리 학생들은 어떨까? 감사함과 꿈이 부재한 교육계의 월급쟁이밖에 되지 않는 지금, 은사님과 학생들에게 죄송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