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

날마다 마주하는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직업은 무엇인가. 필시 정치인일 것이다. 정치의 요체가 분배에 있고, 그것의 실행주체가 정치인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정치인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렇다면 정치인의 밑천은 무엇일까?! 자의반 타의반으로 들여다보게 되는 국내와 세계정세의 변화양상을 보면서 가지는 의문이다. 무슨 자산을 가지고 정치인들은 지역사회와 국가,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하는 것일까.

21세기 한국사회의 초석을 놓은 사람들은 노동자와 농어민이었다. 그들은 산업사회를 경과하면서 정치-경제적인 불평등과 소외를 우심하게 겪은 분들이다. 그들이 일궈낸 우골탑 (牛骨塔) 신화를 바탕으로 대졸자들이 양산되어 7∼80년대 수출역군이 된다. 그런 사품에도 사법-행정-외무고시가 젊은이들을 사로잡고, 그들이 한국사회의 주류를 형성한다. 오늘날 막강한 힘을 과시하는 이른바 관료들은 ‘고시족’의 선배인 셈이다.

일본과 한국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가 ‘관료공화국’이라는 점에 토를 다는 사람은 없을 터. 그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 국가를 논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관료들의 최종 목표지점은 장차관이며, 그것을 위한 교두보는 1급 국장이다. 실무야 5급 사무관이 하겠지만, 최종 결재권자 직전의 국장이 가진 힘은 막강하다. 그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결국 정치는 관료들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한국사회의 최고 엘리트를 자임하는 관료집단을 효율적으로 제어하는 방도는 정치인의 사회정의와 역사관, 그리고 언어일 것이다. 정치인은 기획하고, 관료는 실행하기 때문이다. 기획의 정점에 자리하는 것은 기획자의 역사의식과 사회정의이며, 그것은 오직 언어로 온전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정치인의 언어는 그가 가진 자산과 밑천의 최대치를 발현하는 알파이자 오메가다. 요컨대 정치인의 언어를 분석하면 그의 모든 것이 명확하게 현현(顯現)하게 된다.

세간에 회자되는 ‘달창(달빛창녀단)’과 ‘문빠’ 그리고 ‘독재자’ 같은 어휘는 이른바 판검사 출신 정치인들의 입에서 나왔다. 제1야당 대표자들이 대중적인 집회에서 박수와 환호갈채를 받으며 쏟아낸 반역사적이고 반지성적이며 거칠기 짝이 없는 발언이다. 우리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30년 군부독재의 서슬 퍼런 폭력과 억압, 굴종과 투쟁의 시기를 지나왔다. 1980년 5·18 광주항쟁, 1987년의 87항쟁이 그것을 웅변한다.

무명의 시민, 노동자와 농민이 거리에서 광장에서 지하철에서 뜨겁게 싸웠던 그 세월에 판검사 노릇했던 자들이 ‘독재와 독재자’를 논한다는 사실 자체가 실로 어이없는 노릇이다. 학살자들의 편에 서서 이 나라의 건강한 민중과 지식인을 투옥하고 중형을 선고했던 자들이 갑자기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으니 말이다. 그것도 모자라서 ‘달창’과 ‘한센병환자’ 운운하는 정치인들을 볼라치면 그들의 영혼과 정신이 새삼 궁금해진다.

정치인은 몸이 아니라 언어로 자신을 드러낸다. 언어는 사유의 결과물이자 등가물이기에 언어가 빈곤한 사람은 사유가 부족하거나 결석해있다. 인간은 생각하기 위해 언어를 만들었고, 언어를 가지고 사유를 표현했다. 따라서 거칠고 비속하며 저급하고 공허한 말을 쏟아내는 정치인은 영혼과 지식의 창고가 텅 비어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저 개인과 가문의 영광, 붕당(朋黨)의 이익을 위해 정치의 길로 나선 자인 것이다.

언어의 빈곤은 사유의 빈곤과 동행하며, 양자는 행동의 빈곤과 위축을 초래한다. 결과적으로 그런 자들은 듣고 싶고, 보고 싶은 것만 듣고 본다.‘오디세이야’의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처럼 방향감각과 균형감각을 상실함으로써 파멸과 대면하게 된다. 수준 높은 대다수 한국인은 투철한 역사의식과 사회정의로 무장한 정치인을 고대한다. 막말과 우격다짐으로 한국정치를 희화화하는 저급한 수준의 정치인과 정말 작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