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 재 상

좋겠지 오늘처럼 가을비 으슬대는 저녁답 아무리 더듬어도 달아오르지 않는 맹숭맹숭한 추억 그 싸늘한 손끝을 거머쥐고 가물대는 기억을 등불 삼아 어디 한번 찾아가 보는 것도 망각 그 불멸의 자궁 속에 누가 볼세라 은현잉크로 조그맣게 새겨져 있을 몇몇 여자 이름들 귓불을 어지럽히던 나직한 한숨들 벙어리 장갑 안에서 꼼지락대던 손가락들

시인에게 망각은 끝이 아니라 기억을 생성시키거나 과거의 시간 공간으로 자신을 데리고 가서 그 때의 행위와 관계와 사람들에 대한 것들을 생생하게 되살려놓는 장치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망각을 ‘불멸의 자궁’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