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

최근 구찌(Gucci)가 발표한 새로운 디자인 하나가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지난 봄 패션쇼에서 구찌는 터번형태의 모자를 선보였는데 이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시크교에서는 시크교도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터번이 지닌 신성한 종교적인 의미를 무시하고 구찌가 이것을 단지 패션의 한 형태로 모방 내지는 도용한 것을 비난한 것이다. 결국 이 모자는 전 세계 매장에서 품절표시 등으로 판매를 중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구찌는 이 사건 이전에 선보였던 패션쇼에서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색채가 보인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이는 한 지역이나 나라의 독특한 풍습, 문화, 예술 등이 지구 반대편에 전달되기까지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십년이 지나도 어려웠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전 세계 구석구석까지 거의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도 한 원인일 것이다. 현재는 국제적으로도 저작권법 등이 정비되어 있지만 정보 전달이 원활하지 않았던 불과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일부 국내 대학교수들 중에는 해외의 저작물을 번역하고는 버젓이 자신의 저작물로 둔갑시키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이처럼 지식정보는 물론 문화, 예술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어느 특정 지역이나 사회가 자신들만의 고유한 문화적 독창성을 보호,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리고 다른 지역이나 다른 국가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독창성을 주장하기도 쉽지 않은 시대이기도 하다. 결국 새로운 문화 사조를 받아들일 경우 얼마나 자신의 정체성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융합시킬 수 있는 가에 문화적 도용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다.

포항에서는 최근 철강경기 부진이 장기화됨에 따라 철강에 더하여 지역경기를 뒷받침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 동력의 발굴에 고심하고 있다. 가속기 기반의 바이오신약산업, 이차전지산업 등이 그것이다. 이외에도 바다와 국내 최초의 도심형 운하크루즈를 중심으로 하는 해양관광산업에 대한 기대감도 부풀고 있다. 이에 따른 새로운 볼거리를 위한 아이디어도 적지 않다. 수년전에는 파리의 에펠탑을 세운다, 독도와 같은 인공 섬을 조성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최근에는 케이블카의 설치를 추진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구찌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가 벤치마크라는 미명하에 다른 지역이나 다른 나라에서 성공한 사례를 도입함에 있어 해당 지역의 산업생태나 문화적 독창성을 도외시한 채 다른 지역과 거의 흡사한 형태 그대로 도입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후발주자가 지니는 유일한 기회이자 장점은 철저한 분석으로 선발주자가 보인 문제점에 대한 대안이 있을 때뿐이다. 그러므로 따라만 하는 것은 이른바 ‘짝퉁’에 불과할 뿐이다. 게다가 그것이 지역사회에서 오랫동안 형성된 지방색과 조화되지 못하면 더욱 관광자원으로서의 역할은 기대하기 어렵다.

포항이라는 도시 자체는 비교적 신흥도시에 속한다. 하지만 서울시 면적보다 1.8배나 큰 포항의 넓은 구석구석에 흔적을 남기고 있는 향토역사는 무척 오래된 역사문화도시라 자부할 만하다. 선사시대의 고인돌, 암각화는 물론 신라비, 유배지, 서원 그리고 일제강점기 시절의 독특한 흔적들도 적지 않다. 새로운 관광테마의 도입이나 개발에 굳이 다른 지역의 사례만 찾아다닐 필요는 없다. 누가 보더라도 ‘아, 포항이구나!’라고 다른 지역에 없는 독창적인 관광시설이면 제일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다른 지역의 선진사례를 도입할 때에는 최소한 외형적인 디자인에서라도 포항의 역사와 문화적 정체성을 은연중 나타내어야만 외부방문객이 관심을 가지는 관광테마의 하나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