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 구

저기 아득한 벼랑에 별 하나 떠 있네 온몸을 떨고 있는 한 떨기 젖은 꽃 아무도 못 보게 밤에만 피어있네 무성한 여름 꿈은 은하수에 벗어두고 외로운 점 하나 가슴속에 찍었네 마지막 불씨 하나 절벽 위에 심었네 한 생애 벼랑에서 그렇게 흔들리지만 불길에도 타지 않고 물길에도 젖지 않고 그 길은 가슴 속 칼날 위에 있어 겨울에도 지지 않게 빛으로 피웠네 재가 되어 다시 타는 눈보다 하얀 꽃 아무도 못 꺾게 벼랑 위에 피웠네

오래전 우리 곁을 떠난 지역의 서정시인 김정구형의 따스한 목소리를 다시 듣는다. 아득한 벼랑에 별빛 받아 밤에만 피어나고 칼바람 부는 겨울에도 지지 않는 외로운 벼랑꽃을 얘기하는 시인은 벼랑꽃처럼 외롭게 살다가 갔다. 우리의 한 생이 벼랑꽃처럼 피었다가 지는 것은 아닐까. <시인>